이쑤스가 올렸던 글 그 네번 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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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단 안티 이쑤스의 이야기를 한마디 하고 넘어가자
이쑤스는 분명 게시판에 원어 성경을 읽고 성경이야기를 올린다고 말 했다. 그 말을
안 믿어 줄 이유가 없어 믿어 주고 말을 이어 간다. 그런데 이런 이쑤스가 누가복음
16장 19절과 20절 말씀을 올렸다 다시 한 번 살펴보자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20)나사로라 이름 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여기 까지다
이 두 성구에서 부자에겐 이름이 없고 나사로에게만 이름이 있다고 정의를 내린다.
나사로에게 이름이 있다는 사실은 성경이 밝히는 문제이니 이 문제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부자는 이름이 없다는 억지는 무슨 근거인지 성경으로 밝힐 수가 없는 문제다
하지만 이쑤스는 성경에 이름이 나오지 않기에 부자는 이름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란
억지를 부린다.. 이쑤스가 이름이 없이 사는 부자라는 사람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다고 성경에 나오는 문제이니 이쑤스도 이는 부정하지 못 하리라.
이제부터 자색이란 무슨 의미를 지닌 단어인지 알아보자. 원어로 "프로퓌란(πορφυραν)"
란 단어로 기본 어는 "프로퓌라(πορφυρα)"다 히브리어로는 "아르게만, 톨라, 테케르트
등의 단어가 우리말 자색으로 번역 되는 단어다. 그런데 히브리문화권에서 자색이 의미
하는 바는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직물을 자색으로 염색한다는 의미는 그 염색이
매우 힘든 또 가장 귀한 색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자색의 염료는 腹足(복 족)동물류
에 속하는 지중해의 연체동물에서 축출하기 때문에 매우 귀한 염료였으며 그 염료로
염색한 천도 매우 귀한 천으로 여김을 받았다. 그리고 "가나안"이란 이름도 "자색의 땅"
이란 의미라는 것만 보아도 히브리인들은 자색을 얼마나 귀히 여기며 그 자색 옷은
출26:1,31 에는 자색 장막의 기물을 만들었고 출28:4~6, 39:1,28,29 에서도 밝혔듯
제사장의 예복은 청색과 홍색과 함께 자색을 사용한 점을 미루어 보드라도 자색은
히브리인들에겐 매우 귀한 색으로 우리나라 조선시대 관복과 같은 옷을 만드는 천으로
자색 천을 사용한 예로 19절에 부자가 자색 옷을 입었다는 의미는 제사장과 버금가는
그런 지위를 지닌 자라는 의미로 누가는 부자의 옷 색 갈을 자색이라 표현 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다른 옷 이야기가 나오는데 바로 "고운 베옷"이다 원어로는 "빗손βυσσον"
으로 표기 되어 있지만 이사야서 3장 23절을 살펴보면 베옷이 사치품 중에 하나로 사용된
예를 볼 수 있지만 실제로 잘 짜여 진 세마포(베)는 육안으로 비단과 구별이 가질 않을
정도의 고 품질로 매우 고가였으며 높은 직위에 있는 제사장이나 관리들의 겉옷과 속옷을
가리키는 단어로 19절에 나오는 부자는 이름이 없는 부자가 아니라 적어도 제사장 정도의
직위나 높은 관리라는 반증이다
이쑤스가 성경에 대하여 아는바가 없으며 히브리 역사나 풍습을 전혀 모르니 엉뚱한
소리나 씨 부려 쌓고 난리를 부리는 것이다
끝으로 이쑤스에게 말 한다 제발 성경을 모르면 주둥이나 닥치고 있을 것이지 뭐 하러
냄새나는 주둥이는 벌리고 난리냐?
이쑤스는 분명 게시판에 원어 성경을 읽고 성경이야기를 올린다고 말 했다. 그 말을
안 믿어 줄 이유가 없어 믿어 주고 말을 이어 간다. 그런데 이런 이쑤스가 누가복음
16장 19절과 20절 말씀을 올렸다 다시 한 번 살펴보자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20)나사로라 이름 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여기 까지다
이 두 성구에서 부자에겐 이름이 없고 나사로에게만 이름이 있다고 정의를 내린다.
나사로에게 이름이 있다는 사실은 성경이 밝히는 문제이니 이 문제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부자는 이름이 없다는 억지는 무슨 근거인지 성경으로 밝힐 수가 없는 문제다
하지만 이쑤스는 성경에 이름이 나오지 않기에 부자는 이름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란
억지를 부린다.. 이쑤스가 이름이 없이 사는 부자라는 사람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다고 성경에 나오는 문제이니 이쑤스도 이는 부정하지 못 하리라.
이제부터 자색이란 무슨 의미를 지닌 단어인지 알아보자. 원어로 "프로퓌란(πορφυραν)"
란 단어로 기본 어는 "프로퓌라(πορφυρα)"다 히브리어로는 "아르게만, 톨라, 테케르트
등의 단어가 우리말 자색으로 번역 되는 단어다. 그런데 히브리문화권에서 자색이 의미
하는 바는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직물을 자색으로 염색한다는 의미는 그 염색이
매우 힘든 또 가장 귀한 색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자색의 염료는 腹足(복 족)동물류
에 속하는 지중해의 연체동물에서 축출하기 때문에 매우 귀한 염료였으며 그 염료로
염색한 천도 매우 귀한 천으로 여김을 받았다. 그리고 "가나안"이란 이름도 "자색의 땅"
이란 의미라는 것만 보아도 히브리인들은 자색을 얼마나 귀히 여기며 그 자색 옷은
출26:1,31 에는 자색 장막의 기물을 만들었고 출28:4~6, 39:1,28,29 에서도 밝혔듯
제사장의 예복은 청색과 홍색과 함께 자색을 사용한 점을 미루어 보드라도 자색은
히브리인들에겐 매우 귀한 색으로 우리나라 조선시대 관복과 같은 옷을 만드는 천으로
자색 천을 사용한 예로 19절에 부자가 자색 옷을 입었다는 의미는 제사장과 버금가는
그런 지위를 지닌 자라는 의미로 누가는 부자의 옷 색 갈을 자색이라 표현 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다른 옷 이야기가 나오는데 바로 "고운 베옷"이다 원어로는 "빗손βυσσον"
으로 표기 되어 있지만 이사야서 3장 23절을 살펴보면 베옷이 사치품 중에 하나로 사용된
예를 볼 수 있지만 실제로 잘 짜여 진 세마포(베)는 육안으로 비단과 구별이 가질 않을
정도의 고 품질로 매우 고가였으며 높은 직위에 있는 제사장이나 관리들의 겉옷과 속옷을
가리키는 단어로 19절에 나오는 부자는 이름이 없는 부자가 아니라 적어도 제사장 정도의
직위나 높은 관리라는 반증이다
이쑤스가 성경에 대하여 아는바가 없으며 히브리 역사나 풍습을 전혀 모르니 엉뚱한
소리나 씨 부려 쌓고 난리를 부리는 것이다
끝으로 이쑤스에게 말 한다 제발 성경을 모르면 주둥이나 닥치고 있을 것이지 뭐 하러
냄새나는 주둥이는 벌리고 난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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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3-14 03:42
esus0님의 댓글
esus0
이 개만도 못한 잔나비는 예수 이름을 받은 적이 없는, 족보애 들재되지 못한 상넘이고 더러운 문딩이 넘이다.
곧 '개 잔나비'다. 잔나비가 천국 갈수 있나?
-------- 잔나비는 '한 부자와 같은 넘'이다. --------------
첫째
부자는 ‘좋은 것을 받아’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만 했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하지 않았다.
그는 “죽음 저편에 문제”에 대해서는 평생 관심 없이 살다가 죽어 장사되었을 뿐이다.
둘째
그는 할례를 받은 일이 없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반드시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게 되어 있다.
그가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증거는 “그에게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다.
셋째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며, 아브라함 품에 들어 갈 수 없다.
그는 육신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으나
“이름 없는 한 부자”이었을 뿐이다.
“이름”은 할례 받을 때 명명식을 갖는다.
---------------------------------------
개잔나비는 침례를 받은 적이 없다. 당연히 '예수' 이름을 받은 적이 없을 뿐 더러 예수를 믿어 본적도 없는
불상치도 않는 개만도 못한 넘이다.
이넘은 인품이 전혀 생성되지 못한 넘으로 ---
곧 '개 잔나비'다. 잔나비가 천국 갈수 있나?
-------- 잔나비는 '한 부자와 같은 넘'이다. --------------
첫째
부자는 ‘좋은 것을 받아’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만 했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하지 않았다.
그는 “죽음 저편에 문제”에 대해서는 평생 관심 없이 살다가 죽어 장사되었을 뿐이다.
둘째
그는 할례를 받은 일이 없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반드시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게 되어 있다.
그가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증거는 “그에게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다.
셋째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며, 아브라함 품에 들어 갈 수 없다.
그는 육신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으나
“이름 없는 한 부자”이었을 뿐이다.
“이름”은 할례 받을 때 명명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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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잔나비는 침례를 받은 적이 없다. 당연히 '예수' 이름을 받은 적이 없을 뿐 더러 예수를 믿어 본적도 없는
불상치도 않는 개만도 못한 넘이다.
이넘은 인품이 전혀 생성되지 못한 넘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