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문제는 목사요, 교계의 문제는 지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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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보도한 목사들의 성범죄 사례들
여기에서 한겨레신문의 기사를 대충 살펴가며 거기에 필자의 견해도 조금씩 피력해 보고자 한다.
<한겨레>는, ‘사회 각 부문에서 미투운동이 계속되고 있지만’, ‘교회 내 성폭력은 끊이지 않는다’며 그 원인으로 ‘교단권력’이라 할 수 있는 ‘교회재판’이 ‘사회에서 유죄로 판명난 사건들의 사실관계마저 부인하며, 가해자가 목회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면죄부”를 발급해 주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들고 있다. 그러며 자기들이 입수한, ‘성범죄를 저지른 목사 4명의 교회재판 관련 기록’을 통해 그 실상을 폭로했는데, 그 대략은 이렇다.
► 서울 서초구 ㅅ교회 박아무개 목사의 사례
박 목사는 ‘성폭행 미수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지난해 8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데, 피해자는 같은 교회에 다니던 자신의 ‘조카’였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목사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노회 재판국이 지난 1월 그에게 ‘목사직 박탈’이 아닌 ‘정직’이라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된 데에는 ‘아하!’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재판국원 일곱 명 중 재판국장을 포함한 세 명이 사회법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를 위한 탄원서를 써준 교회 권력자들이었’던 것이다.
►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ㅈ목사의 사례
‘ㅈ목사는 2007-2009년 대전 ㄱ교회 담임목사 재직 중 신도를 성추행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피해 여신도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ㅈ목사가 찜질방에서 몸을 만지는 등 수 차례 강제추행을 했다. 피해를 겪은 뒤 교회에서 갑자기 사라진 이들을 수소문해보니 나와 같은 피해를 경험한 이들이었다.”
‘ㅈ목사는 2009년께 서울 ㄹ교회 담임목사로 자리를 옮겼’고, ‘심씨를 포함한 5명은 ㅈ목사가 떠난 뒤 성희롱․성추행 피해를 밝히고 나섰다’. 그리고 ‘이들은 피해 증언을 바탕으로 2010년 ㄹ교회가 소속된 연회(노회)에 ㅈ목사에 대한 처벌을 요청하는 소를 제기했다. 하지만 교회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고소인(피해자) 3명에 대한 추행은 고소 시한 (3년)이 지났고, 나머지 고소인 2명의 경우 일방적인 진술이라 증거가 부족하다’고 ‘일출’한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얼마나 설득력이 약한 핑계였으면 ‘당시 연회 책임자(감독)인 ㄱ목사마저 “상당히 아쉬운 심사위 결과”’라 했겠는가.
그런 ㅈ목사가 지난해 10월 ‘1만 명이 넘는 교단 내 목사 중 12명만 차지하는 요직’인 ‘연회 감독으로 취임했다’. ‘결국 보다 못한 교단 내 신도․목회자들이’ 나서서 ‘ㅈ목사의 감독직 사퇴를 요구했다’. 그런 뒤 ‘금권선거 의혹이 추가로 불거지며 그는 두 달 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를 물러나게 한 쪽의 설명에 의하면 ‘교단이 8년 전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철면피가 이런 것이라며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사회법․교회법에서 모두 불기소된 사건”이라며 성폭력 의혹을 부인하고, 여전히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
►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의 사례
삼일교회 목회 당시 2009년부터 전 목사에게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 5명 이상에게서 나왔다. 그런데도 그는 홍대새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목회 활동을 할 수 있는 까닭 역시 교회 권력의 카르텔 덕분이다’. 삼일교회 당회는 그에게 ‘3개월 설교 중지, 6개월 수찬 정지’라고 하는 징벌이라기보다 휴가라고도 할 수 있는 징계를 내렸다.
그런데다가 ‘노회는 전 목사가 삼일교회를 떠나 개척한 교회를 소속 교회로 승인했다’. 여러 차례 미루고 미룬 끝에 열린 노회의 재판은 ‘공직 정지 2년’이라는 깃털보다도 가벼운 징계를 내렸다. 2년 동안 교단 내 직책을 맡을 수 없는 것을 무슨 징계라 할 수 있는가.
‘이 교회재판의 재판국 구성에서도 문제가 발견되었다. 재판국원이던 김아무개 목사가 개척한 홍대새교회에 가서 “많은 사람들이 전 목사를 공격하지만, 우리 노회는 (이들을) 지킬 것”이라고 연설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김 목사는 홍대새교회를 노회 소속으로 승인한 노회장이기도 했다’. 김 목사 그에게는 하나님은 없고 전 목사만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삼일교회는 전 목사 처벌을 요구하는 교인들의 의사를 반영해 총회에 상소했다’.그러나 이는 예장합동총회에서 대표단 ‘과반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아무개 원로목사는 당시 총회 연단에서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죄지은 것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 맞습니까?”라고 전 목사를 비호했다’.
낮 뜨거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게 교계의 지도자, 그것도 원로목사라는 타이틀이 붙은 지도자라는 말인가. 목사는 하나님만이 벌을 줄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분 또한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닌지 모르겠다.
► 서울 ㅇ교회 전 담임 ㅇ목사의 사례
“목회요? 계속해야지요.” ‘2017년 신도를 성추행한 죄로 징역 6개월 확정판결을 받았던’ ㅇ목사가 출소 후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당연한 듯’ 한 말이다.
노회 재판국이 ‘ㅇ목사에게 직무정지 1년의 징계만을 내렸’기 때문이다. 노회는 이 사실을 뒤늦게에서야 피해자에게 알려 주어 상소할 수 있는 기회도 얻지 못하게 하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재판국장이라는 사람이 “성폭행이 아닌 성추행이었기에 면직 결정을 하지 않았다”며 그것을 해명이라고 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교단․교계의 성범죄 실태는 도를 넘어도 한참이나 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목회자 성범죄 31건을 집계한 결과, 교단이 가해자의 목사직을 박탈(면직)한 경우는 5건뿐이었다’는 한심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이다
어떤가. 이런 것들이 사실인데도 교회의 문제는 목사요, 교계의 문제는 지도자라는 말에 아니라 할 것인가. 물론 모든 목사, 모든 지도자가 문제라 할 수는 없다. 신도들이 본받고 가르침을 받기에 충분한 목사들도 많다. 아직 미숙하지만 하나님의 뜻,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변화되는 성장을 이루어 가려고 기도하며 노력하는 목사들도 많다.
문제는 미숙이 아니라 자신을 신앙으로 성숙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데에 있다. 그런 사람일수록 성경지식이 곧 신앙이라고 양자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은 지식을 쌓으라는 것이 아니라 읽고 알아 그대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러려고 기도하며 노력할 뿐인데,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그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라, 위에서 언급한 목사들을. 누구 하나라도 그 같은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를 보라는 말이다. 필자는 자신도 목사이면서 목사들을 고운 눈으로 보지 못한다. 아니 보려하지 않는다. 곱지 않은 것을 곱게 보는 것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이런 필자를 향해 그럼 너는 어떠냐 하면 할 말이 없다. 다만 가만히 지켜보고 계시는 불꽃같은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만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필자가 목사들을 향해 정신을 차리라고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건더기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이다. 우리의 현실이 이러한데 어떻게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뿐이라면 또 모르지만,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지 않으면 모두가 공멸하고 말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이다.
예수계서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마23:6)을 경계하셨다. 그런데도 직무상의 위치를 상좌로 착각한데다가 그것도 모자라 실제보다 높은 위치의 대접을 받으려고 안달하는 자들을 보고 ‘독실한’이라는 수식어로도 모자라 ‘신실한’이라는 말까지 동원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는 자들이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기도하며 ‘믿습니다’의 ‘믿’에 힘주어 길게 ‘믿-습니다’로 발음하고, 이 교회 저 교회 돌아다니며 신앙 아닌 것을 신앙으로 포장하여 간증하며, 지하철역 같은 데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 쓴 어깨띠를 두르고 전도하는 것 같은 열심을 ‘독실’ 또는 ‘신실’로 아는 이 세대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보실까 싶다. 거기에다 한창 예쁘게 피어나는 무궁화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망국충들의 음녀 같은 웃음을 두 주먹 불끈 쥐고 득의양양하여 반기는 것 같은 현상이 우리의 현실이다.
위기인 것이다. 과장이 아니다. 미세먼지를 품은 바람 같은 것이니 지나가기를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나, 그 바람을 밀어내는 차고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도하는 것이 기독인의 신앙이다.
그러려면. 기도하려면 자기 자신이 맹인 지도자의 인도를 받는 맹인이 되지 않게 해 주시라는 것부터 빌어야 한다. 우선 자신도 맹인이 아닌지 돌아보고, ‘눈이 나쁘면’ 그 ‘눈이 성하’게 해 주시라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맹인 지도자의 인도를 받은 대열에서 떠나 그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들은 너와 나의 우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우리가 그들을 움직이는 힘인 것이다.
그들에게서 의인을 바라라는 것이 아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하셨다. 나 자신이 그러하듯 그들 목사, 지도자들도 진리에 순응하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마음이 앞선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공동번역 마7:7-8)
<한겨레>가 보도한 목사들의 성범죄 사례들
여기에서 한겨레신문의 기사를 대충 살펴가며 거기에 필자의 견해도 조금씩 피력해 보고자 한다.
<한겨레>는, ‘사회 각 부문에서 미투운동이 계속되고 있지만’, ‘교회 내 성폭력은 끊이지 않는다’며 그 원인으로 ‘교단권력’이라 할 수 있는 ‘교회재판’이 ‘사회에서 유죄로 판명난 사건들의 사실관계마저 부인하며, 가해자가 목회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면죄부”를 발급해 주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들고 있다. 그러며 자기들이 입수한, ‘성범죄를 저지른 목사 4명의 교회재판 관련 기록’을 통해 그 실상을 폭로했는데, 그 대략은 이렇다.
► 서울 서초구 ㅅ교회 박아무개 목사의 사례
박 목사는 ‘성폭행 미수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지난해 8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데, 피해자는 같은 교회에 다니던 자신의 ‘조카’였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목사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노회 재판국이 지난 1월 그에게 ‘목사직 박탈’이 아닌 ‘정직’이라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된 데에는 ‘아하!’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재판국원 일곱 명 중 재판국장을 포함한 세 명이 사회법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를 위한 탄원서를 써준 교회 권력자들이었’던 것이다.
►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ㅈ목사의 사례
‘ㅈ목사는 2007-2009년 대전 ㄱ교회 담임목사 재직 중 신도를 성추행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피해 여신도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ㅈ목사가 찜질방에서 몸을 만지는 등 수 차례 강제추행을 했다. 피해를 겪은 뒤 교회에서 갑자기 사라진 이들을 수소문해보니 나와 같은 피해를 경험한 이들이었다.”
‘ㅈ목사는 2009년께 서울 ㄹ교회 담임목사로 자리를 옮겼’고, ‘심씨를 포함한 5명은 ㅈ목사가 떠난 뒤 성희롱․성추행 피해를 밝히고 나섰다’. 그리고 ‘이들은 피해 증언을 바탕으로 2010년 ㄹ교회가 소속된 연회(노회)에 ㅈ목사에 대한 처벌을 요청하는 소를 제기했다. 하지만 교회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고소인(피해자) 3명에 대한 추행은 고소 시한 (3년)이 지났고, 나머지 고소인 2명의 경우 일방적인 진술이라 증거가 부족하다’고 ‘일출’한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얼마나 설득력이 약한 핑계였으면 ‘당시 연회 책임자(감독)인 ㄱ목사마저 “상당히 아쉬운 심사위 결과”’라 했겠는가.
그런 ㅈ목사가 지난해 10월 ‘1만 명이 넘는 교단 내 목사 중 12명만 차지하는 요직’인 ‘연회 감독으로 취임했다’. ‘결국 보다 못한 교단 내 신도․목회자들이’ 나서서 ‘ㅈ목사의 감독직 사퇴를 요구했다’. 그런 뒤 ‘금권선거 의혹이 추가로 불거지며 그는 두 달 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를 물러나게 한 쪽의 설명에 의하면 ‘교단이 8년 전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철면피가 이런 것이라며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사회법․교회법에서 모두 불기소된 사건”이라며 성폭력 의혹을 부인하고, 여전히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
►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의 사례
삼일교회 목회 당시 2009년부터 전 목사에게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 5명 이상에게서 나왔다. 그런데도 그는 홍대새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목회 활동을 할 수 있는 까닭 역시 교회 권력의 카르텔 덕분이다’. 삼일교회 당회는 그에게 ‘3개월 설교 중지, 6개월 수찬 정지’라고 하는 징벌이라기보다 휴가라고도 할 수 있는 징계를 내렸다.
그런데다가 ‘노회는 전 목사가 삼일교회를 떠나 개척한 교회를 소속 교회로 승인했다’. 여러 차례 미루고 미룬 끝에 열린 노회의 재판은 ‘공직 정지 2년’이라는 깃털보다도 가벼운 징계를 내렸다. 2년 동안 교단 내 직책을 맡을 수 없는 것을 무슨 징계라 할 수 있는가.
‘이 교회재판의 재판국 구성에서도 문제가 발견되었다. 재판국원이던 김아무개 목사가 개척한 홍대새교회에 가서 “많은 사람들이 전 목사를 공격하지만, 우리 노회는 (이들을) 지킬 것”이라고 연설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김 목사는 홍대새교회를 노회 소속으로 승인한 노회장이기도 했다’. 김 목사 그에게는 하나님은 없고 전 목사만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삼일교회는 전 목사 처벌을 요구하는 교인들의 의사를 반영해 총회에 상소했다’.그러나 이는 예장합동총회에서 대표단 ‘과반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아무개 원로목사는 당시 총회 연단에서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죄지은 것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 맞습니까?”라고 전 목사를 비호했다’.
낮 뜨거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게 교계의 지도자, 그것도 원로목사라는 타이틀이 붙은 지도자라는 말인가. 목사는 하나님만이 벌을 줄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분 또한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닌지 모르겠다.
► 서울 ㅇ교회 전 담임 ㅇ목사의 사례
“목회요? 계속해야지요.” ‘2017년 신도를 성추행한 죄로 징역 6개월 확정판결을 받았던’ ㅇ목사가 출소 후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당연한 듯’ 한 말이다.
노회 재판국이 ‘ㅇ목사에게 직무정지 1년의 징계만을 내렸’기 때문이다. 노회는 이 사실을 뒤늦게에서야 피해자에게 알려 주어 상소할 수 있는 기회도 얻지 못하게 하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재판국장이라는 사람이 “성폭행이 아닌 성추행이었기에 면직 결정을 하지 않았다”며 그것을 해명이라고 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교단․교계의 성범죄 실태는 도를 넘어도 한참이나 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목회자 성범죄 31건을 집계한 결과, 교단이 가해자의 목사직을 박탈(면직)한 경우는 5건뿐이었다’는 한심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이다
어떤가. 이런 것들이 사실인데도 교회의 문제는 목사요, 교계의 문제는 지도자라는 말에 아니라 할 것인가. 물론 모든 목사, 모든 지도자가 문제라 할 수는 없다. 신도들이 본받고 가르침을 받기에 충분한 목사들도 많다. 아직 미숙하지만 하나님의 뜻,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변화되는 성장을 이루어 가려고 기도하며 노력하는 목사들도 많다.
문제는 미숙이 아니라 자신을 신앙으로 성숙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데에 있다. 그런 사람일수록 성경지식이 곧 신앙이라고 양자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은 지식을 쌓으라는 것이 아니라 읽고 알아 그대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러려고 기도하며 노력할 뿐인데,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그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라, 위에서 언급한 목사들을. 누구 하나라도 그 같은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를 보라는 말이다. 필자는 자신도 목사이면서 목사들을 고운 눈으로 보지 못한다. 아니 보려하지 않는다. 곱지 않은 것을 곱게 보는 것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이런 필자를 향해 그럼 너는 어떠냐 하면 할 말이 없다. 다만 가만히 지켜보고 계시는 불꽃같은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만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필자가 목사들을 향해 정신을 차리라고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건더기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이다. 우리의 현실이 이러한데 어떻게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뿐이라면 또 모르지만,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지 않으면 모두가 공멸하고 말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이다.
예수계서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마23:6)을 경계하셨다. 그런데도 직무상의 위치를 상좌로 착각한데다가 그것도 모자라 실제보다 높은 위치의 대접을 받으려고 안달하는 자들을 보고 ‘독실한’이라는 수식어로도 모자라 ‘신실한’이라는 말까지 동원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는 자들이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기도하며 ‘믿습니다’의 ‘믿’에 힘주어 길게 ‘믿-습니다’로 발음하고, 이 교회 저 교회 돌아다니며 신앙 아닌 것을 신앙으로 포장하여 간증하며, 지하철역 같은 데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 쓴 어깨띠를 두르고 전도하는 것 같은 열심을 ‘독실’ 또는 ‘신실’로 아는 이 세대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보실까 싶다. 거기에다 한창 예쁘게 피어나는 무궁화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망국충들의 음녀 같은 웃음을 두 주먹 불끈 쥐고 득의양양하여 반기는 것 같은 현상이 우리의 현실이다.
위기인 것이다. 과장이 아니다. 미세먼지를 품은 바람 같은 것이니 지나가기를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나, 그 바람을 밀어내는 차고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도하는 것이 기독인의 신앙이다.
그러려면. 기도하려면 자기 자신이 맹인 지도자의 인도를 받는 맹인이 되지 않게 해 주시라는 것부터 빌어야 한다. 우선 자신도 맹인이 아닌지 돌아보고, ‘눈이 나쁘면’ 그 ‘눈이 성하’게 해 주시라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맹인 지도자의 인도를 받은 대열에서 떠나 그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들은 너와 나의 우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우리가 그들을 움직이는 힘인 것이다.
그들에게서 의인을 바라라는 것이 아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하셨다. 나 자신이 그러하듯 그들 목사, 지도자들도 진리에 순응하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마음이 앞선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공동번역 마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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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4-06 01:20
이대로님의 댓글
이대로
여호와의 증인은 보통 제명시킴
회개복귀는 수년 후에나 가능...그것도 초신자 대우함
회개복귀는 수년 후에나 가능...그것도 초신자 대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