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이후 한반도의 외교적 선택과 2020년 우리 앞에 놓여진 외교적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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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 대전 후 수 많은 나라들이 독일과 일본 이탈리아에 대항하는 연합 선언을 하였고
결국 2차 세계 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물론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선언을 하였지만 국제적인
인정은 받지 못했다고 전해 진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대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손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중국 정부와 연계하여 일본과 싸웠다는 인정을 중국과 그 외 몇 나라로 부터 받은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자주 독립을 하였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자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국제 사회의 주목은 없는 것이니까.
그야 말로 세계를 집어 삼킬 듯 맹령하던 독일과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넘 보던 일본의 영향력은 이차
대전 패배와 함께 연합국의 처분에 자신들의 목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고 일본은 자국내에
원자탄이 떨어지는 최초의 국가가 되고 말았다. 전후 일본이 경제적으로 부흥 했다고 하지만
백인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종전 후의 역사를 안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엔의 상임 이사국은 2차 세계 대전에서 실질적으로 맹렬히 싸웠던 미국 중곡 소련(당시) 영국 프랑스
가 되었고 중국의 대표는 패퇴하여 바다 건너 대만에 정착한 장계석의 중화민국이엇지만, 결국 1971년
미국이 중국과 관계 개선을 계기로 상임이사국은 본토의 당시 모택동이 지배하던 중국에 넘어 갔다.
이 때나 지금이나 미국의 편에 설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은 그 동안의 선린 관계를 저버리고 미국의 입장에
따라 다른 수 많은 나라처럼 중국 편에 설 수 밖에 없었고 우리는 그 미움을 여즉도 받고 있다. 많은
대만인들이 한국을 일본 보다 호감 안가는 나라로 꼽는다는 것이다.
그 후 오랫동안 남한과 북한은 유엔에 가입 조차 할 수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나라로 인정 하지
않았던 것이다. 냉전시대가 도래 했고 많은 국가들은 양자 택일 할 수 밖에 없었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의 대립이란 말도 있지만 그 보다는 미국을 주축으로한 연합과 소련 중국을 주축으로한 연합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압력에 직면 한 것이다. 그 극명한 갈등의 소산이 한반도에 남아 있다. . 두 국가가 생긴 것이다.
그 두 나라는 내전까지 치루어가며 싸웠지만 결국 둘로 남게 되었다.
미국을 택한 한국과 중국과 소련을 택한 한반도의 두 국가의 운명은 그렇게 갈린 것이다.
그 후 70년...신 냉전시대라고 불리우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무엇을 택하느냐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달려 있다. 또는 북한 정부에 달려 있다. 북한은 어찌 처신 할까? 산화비님의 견해대로 행동한다 해도
이상 할 것은 없다.
영원한 혈맹이 없다는 것 우리는 몸으로 보여 주었다. 우리에게 자동차 공장도 없던 당시
드럼통 펴 만든 자동차까지 수입 해 주었던 대만을 걷어찬 것이다. 더 나아가 장계석 정부는
우리나라 임시정부를 인정하고 같이 일본으로 부터의 독립 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협력한 지도자다.
대한민국의 올바른 선택이 있기를 바란다. 미국의 힘이 다 빠졌다 느끼면 중국이나 다른 옵션을
받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오판이 가져 올 부작용도 생각 해 보아야 한다. 미국과 친한 이스라엘과
미국과 등지는 또는 등질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중동국가들의 삶을 질을 살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죽창들고 살 것이냐 금수저 물고 살 것이냐의 기로의 놓였는지도
모른다.
나랑 깐부 맺을 사람 여기 붙어라 하면 무수히 붙을 넘은 그래도 좋지만
그거 해서 한 나라도 못 건질 처지면 결국 센 넘중 제일 센놈 골라 깜부 맺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옳바른 선택이 있기를 희망 한다.
결국 2차 세계 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물론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선언을 하였지만 국제적인
인정은 받지 못했다고 전해 진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대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손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중국 정부와 연계하여 일본과 싸웠다는 인정을 중국과 그 외 몇 나라로 부터 받은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자주 독립을 하였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자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국제 사회의 주목은 없는 것이니까.
그야 말로 세계를 집어 삼킬 듯 맹령하던 독일과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넘 보던 일본의 영향력은 이차
대전 패배와 함께 연합국의 처분에 자신들의 목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고 일본은 자국내에
원자탄이 떨어지는 최초의 국가가 되고 말았다. 전후 일본이 경제적으로 부흥 했다고 하지만
백인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종전 후의 역사를 안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엔의 상임 이사국은 2차 세계 대전에서 실질적으로 맹렬히 싸웠던 미국 중곡 소련(당시) 영국 프랑스
가 되었고 중국의 대표는 패퇴하여 바다 건너 대만에 정착한 장계석의 중화민국이엇지만, 결국 1971년
미국이 중국과 관계 개선을 계기로 상임이사국은 본토의 당시 모택동이 지배하던 중국에 넘어 갔다.
이 때나 지금이나 미국의 편에 설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은 그 동안의 선린 관계를 저버리고 미국의 입장에
따라 다른 수 많은 나라처럼 중국 편에 설 수 밖에 없었고 우리는 그 미움을 여즉도 받고 있다. 많은
대만인들이 한국을 일본 보다 호감 안가는 나라로 꼽는다는 것이다.
그 후 오랫동안 남한과 북한은 유엔에 가입 조차 할 수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나라로 인정 하지
않았던 것이다. 냉전시대가 도래 했고 많은 국가들은 양자 택일 할 수 밖에 없었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의 대립이란 말도 있지만 그 보다는 미국을 주축으로한 연합과 소련 중국을 주축으로한 연합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압력에 직면 한 것이다. 그 극명한 갈등의 소산이 한반도에 남아 있다. . 두 국가가 생긴 것이다.
그 두 나라는 내전까지 치루어가며 싸웠지만 결국 둘로 남게 되었다.
미국을 택한 한국과 중국과 소련을 택한 한반도의 두 국가의 운명은 그렇게 갈린 것이다.
그 후 70년...신 냉전시대라고 불리우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무엇을 택하느냐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달려 있다. 또는 북한 정부에 달려 있다. 북한은 어찌 처신 할까? 산화비님의 견해대로 행동한다 해도
이상 할 것은 없다.
영원한 혈맹이 없다는 것 우리는 몸으로 보여 주었다. 우리에게 자동차 공장도 없던 당시
드럼통 펴 만든 자동차까지 수입 해 주었던 대만을 걷어찬 것이다. 더 나아가 장계석 정부는
우리나라 임시정부를 인정하고 같이 일본으로 부터의 독립 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협력한 지도자다.
대한민국의 올바른 선택이 있기를 바란다. 미국의 힘이 다 빠졌다 느끼면 중국이나 다른 옵션을
받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오판이 가져 올 부작용도 생각 해 보아야 한다. 미국과 친한 이스라엘과
미국과 등지는 또는 등질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중동국가들의 삶을 질을 살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죽창들고 살 것이냐 금수저 물고 살 것이냐의 기로의 놓였는지도
모른다.
나랑 깐부 맺을 사람 여기 붙어라 하면 무수히 붙을 넘은 그래도 좋지만
그거 해서 한 나라도 못 건질 처지면 결국 센 넘중 제일 센놈 골라 깜부 맺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옳바른 선택이 있기를 희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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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6-08 15:47
장파이콜님의 댓글
장파이콜
ㅋㅋㅋ
깜부 맺는 걸로 결론을 내리셨는데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해방후 한국 깜부역사를 한페이지에 잘 요약해 노셨네요.
보시면 알지만 그 옛날 당,명,청나라도 무시무시한 나라지만 모택동 이후 공산화된 중국은
정말 극악무도한 나라입니다. 파륜궁 잡아다가 장기적출 일년에 십만 껀씩하고.
한국 좌파던 우파던 많이 친중으로 기울어 큰일 입니다.
미국 트럼프하고는 차원이 다르죠.
국민들 그거 안보이나?
깜부 맺는 걸로 결론을 내리셨는데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해방후 한국 깜부역사를 한페이지에 잘 요약해 노셨네요.
보시면 알지만 그 옛날 당,명,청나라도 무시무시한 나라지만 모택동 이후 공산화된 중국은
정말 극악무도한 나라입니다. 파륜궁 잡아다가 장기적출 일년에 십만 껀씩하고.
한국 좌파던 우파던 많이 친중으로 기울어 큰일 입니다.
미국 트럼프하고는 차원이 다르죠.
국민들 그거 안보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