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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1 사랑
이 단어는 아름답다. 그리고 사랑은 오늘도 이루어지며 여전히 설레인다. 비록 손가락으로 만든 우스꽝스러운 모양일지라도, 서로를 미워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늘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있다면, 미움도 질투도 세상의 혼란도 아픔도 없을 것이다. 지독한 사랑의 소설 "폭풍의 언덕"을 손에 들고 있다. 이 가슴 졸이며 무섭고 시린 줄거리로 마치 불어오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함께 흔들리며 읽는 중이다. 도대체 사랑은 무엇일까? 세상의 모든 예술은 사랑을 바탕으로 심어놓은 뒤에야 하나씩 기둥을 세우고 담을 쌓으며 형성해 간다. 이 세상을 만드신 분에 대한 고귀한 사랑으로부터 인간의 본능적인 사랑까지 모든 기쁨과 환희와 고통의 절절한 이야기들이, 글과 그림과 음악으로 남겨져 오랜 세월을 넘어 모든 이들을 감동하게 만든다. 그러나 모든 사랑이 예술 작품 속에서처럼 진실하며 순결하지는 않다. 세상에는 "만약에" 하는 조건을 내걸며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미련 없이 떠나는 사랑도 있고, 또 "때문에"라는 이유가 붙어 그 형체가 사라지면 -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런 사랑도 있다. 요즈음 나는 새삼 많이 아파한다.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엄마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정말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아픔은 철없었고 모자랐고 불평투성이였던 나의 당연한 벌이라고 생각하며, 그로 인해 더 많이 사랑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엄마도 처음 해보는 사랑이었는데, 이제서야 깨닫고 후회하며 슬퍼하는 그러나 다시는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조건이 붙지 않으며 어떠한 경우라도 무엇이 되어있던지 끝까지 지켜주는 영원한 부모의 사랑이었었는데, 그 사랑을 제대로 느끼며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세대를 넘어가며 세월을 따라 이어지는 삶의 이치가, 어느덧 나의 순서가 되어가는 중이다. 과연 무엇으로 어떠한 사랑을 했었다고 기억될까 하는 숙제 앞에서 숨을 들이쉬며, 책상 앞 자세부터 고쳐 앉는다. 오늘도 꿈꾼다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고 사랑은 영원히 존재하며 그로 인해 세상은 다음 세대로 넘겨지고, 또 그 사랑 때문에 누군가는 설레이고 환희하며 더불어 아파할 것이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9-07-03
집을 좋아한다. 어쩌다 밖에 나와 있다 해가 지며 날이 어두워지면 얼른 돌아가고 싶어 서둔다. 집이라는 의미는 지붕과 벽이 있어 바깥의 위험과 날씨 변화에 보호해주며, 힘들고 지칠 때 안전하게 머물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다. 살면서, 지붕 하나 없이 세차게 내리는 비를 차마 피하지 못한 채로 서로를 사랑할 여유를 가질 수 없을 것이며, 바람 하나 막아주는 벽 하나 없이 정신적인 안정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집에서만 지내다 나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얼굴에 이쁘게 화장을 하며 제일 좋은 옷을 입고 대문을 나선다. 진짜의 나는 잠깐 내려놓고, 분장하고 무대 의상을 입고 나갈 채비를 하는 것이다. 세상 밖의 일에 서툴고 부족하며 가벼운 두려움까지 가지고 있고, 감정적인 성격과 잘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미소로 숨긴 체 산다. 어쩌다, 있는 본 모습 그대로 드러내어 마음의 상처로 되돌려 받으면 후회하며 아파한다. 또 사람들과의 관계에 혼란스레 돌아온 그 날 밤은, 불도 켜지 않은 체 어둠 속에 앉아 부끄럼 없이 맥주 한잔 들이킨다. 이런 나를 온전히 내어놓고, 힘들고 지칠 때 아무 생각하지 않고 편안하게 쉴 수 있고 위로받는 곳이 집이다. 그러듯 하루가 지나가고, 한밤중 느닷없이 켜지는 마당의 물주는 소리에 깨어 깜깜한 어둠 속에 무서워하지만, 다시 다독거리며 기억하여 도로 잠드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 동네, 어떤 크기, 얼마의 값으로 매겨지는 건물로서의 개념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편안해지는 곳으로 서로 사랑하고 돌보며 지나온 수많은 순간과, 잘못한 후회투성이의 아픈 이야기와 사랑하는 곁의 누군가가 떠나는 슬픔이 다 녹아있는 곳이 세상에 있기에 삶은 그리 퍽퍽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함께 나누며 살아가며 이루어가는 오래된 세월과 구석구석 배어있는 밥 냄새처럼 익숙하며 텁텁한 숱한 시간을 함께 나누며 보낸, 묵은 사랑과 추억이 담겨있는 집을 좋아한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9-06-02 신앙
어릴 적 읽은 동화책 속에, 할머니가 해가 너웃너웃 넘어가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산을 넘어갈 때마다, 무서운 호랑이가 앞을 가로막으며 떡 하나 주면 무사히 보내 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삶도 높은 산을 넘어 가야 할 때가 있고 그 앞에는 알지 못하는 두려운 호랑이 한 마리가 버티고 서있어, 그곳을 지나가기 위해 나도 광주리 속 못난 떡 하나 쥐여주며 지나간다. 내가 가진 떡은 신앙이다. 살아가다 불현듯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지날 적마다, 숨 한번 크게 쉬며 부족한 신앙에 매달린다. 갑작스러운 극심한 배의 통증으로 미련하게 버티며 고생하다 결국 응급실을 찾았고, 급히 수술을 하고 깨어나니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좀 심하게 늦은 맹장 수술을 한 것이다. 독한 진통제에 홀려있었지만 그나마 식구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후, 혼자 남은 병실의 밤은 오롯한 아픔이었다. 온 밤을 아파하며 어스러미 새벽이 밝아오는 걸 바라보다 떠오른 생각이, 또 다른 인생의 산을 무사히 넘어가고 있구나 안심하며, 두려웠다. 얼마나 더 많은, 삶의 산과 언덕과 골짜기를 넘어가야 하는지,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내 신앙 - 떡이 담긴 광주리는 이젠 낡아 부서지고, 그 속의 떡은 볼품없이 못나고 맛없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간직하고 지키고 있지만 여전히 부끄럽고 민망하다. 비록 그런 형편없는 것일지라도 - 힘들고 어렵고 무거워도 - 꼭 붙잡고 지탱하며 넘어질 듯 불안하지만, 용케 긴 길을 걸어가야 한다. 며칠 후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울음 터트리며 감사하면서, 어쩌면 이 못나고 보잘 것 없는 신앙일지라도, 끝까지 간직할 거라 뜨거운 약속 드린다. 살아지며 살아가는 오늘도, 크게 기대고 원하고 투정부려도 되는 알파요 오메가이신 분에 향한 믿음 - 신앙으로, 남겨져 있는 인생의 산과 언덕과 골짜기를 헤매며, 선선히 지나갈 것이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9-05-01 책을 읽으며
언제부터인지 자꾸 마음을 다스리는 책들을 가까이하며 나를 돌아본다. 어쩌면 삶의 계기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또 변화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항상 잘하고 싶다는 조바심으로 종종거리며 살던 때를 돌아보며 후회가 아닌, 그래 그랬었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야 하며 인정해주게 되면서부터 조금씩 자신을 풀어주며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책 안에서 이야기하는 많은 문장에 펜으로 줄을 긋고 또 공감하며 천천히 열어본다. 얼마 전에 읽은 "고요 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이라는 책에서는, 무엇이든 욕심을 내려놓고 천천히 살살 가면 되지 빨리 가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며 힘든 거라는 구절에서는, 몇번을 머리 끄덕인다. 모든 것을 사랑할 수는 있어도 소요할 수 없으며, 넓은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은 아주 잠깐 빌려 쓰는 것이니, 세상을 그저 사랑하고 감사해하며, 잠시지만 행복하게 누리다 가는 것이라는 결론에는, 책 한권을 읽고 남겨진 것으로 삶이 설렌다. 시간은 흘러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작고 많은 것들이 모여 습관으로 변하며 그것은 인격으로 만들어져 내 안에 쌓여가는 것이고, 결국은 궁극적인 하나의 인간을 형성해가는 것일 거다. 작지만 한달 한달 책을 읽으며 그 의미를 음미하고 지내다, 어느 하루 만나 서로의 인생과 경험과 마음을 나누는 날이 있다. 전혀 다른 삶으로 살다 한권의 책으로 만나, 깊고 긴 교감을 나눈다. 이렇게 지나 온 오랜 날들이 쌓여, 격과 품위로도 헛되지 않은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시작은 비록 미약한 작은 것들로 이어져 그 끝은 장대해지리라는 성경 말씀처럼, 분명 삶 속에 가랑비에 옷 젖듯, 온전히 스며 있음도 알고 조금씩 달라져 가는 자신도 느낀다. 책을 읽으며 그 안의 것들이 스며들어, 겸손해지고 내려놓을 줄도 알게 되고 외로움도 느끼면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이런 시간을 보낸 어느쯤이면, 고요해지며 밝아지는 자신을 만나게 될 거라 믿는다. "인간의 일생이라는 것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기 위한 여정이다." (데미안)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9-04-02 나무
아침 식탁에 앉아 창문너머 변함없이 늘 그자리에 서있는 앞마당 커다란 나무들을 보며, 오늘 하루도 평안 하리라 믿어본다. 2년만에 다시 만난 그애의 그림은 언제나 나무이다. 한결같은 대상인, 나무 위에 또 나무를 그리고 있다. 오랜만의 서울이라, 지금도 여전히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궁금하고 또 보고싶은 마음을 잠깐 화장실을 핑계로 징징거렸더니, 선듯 문을 열어준 3층 넓은 화실의 그림 속에서 다시 그애를 보았다. 굳이 따로 만나려 하지도 않았고 실제 마음 길이도 한 발자욱 떨어져 살고 있지만, 늘 응원한다. 서로의 표현 방법-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도 판이하게 다른, 그렇지만 무엇보다 오랜 시간 한결 같이 그림을 그리며 오래된 길을 가고있는 벗이라, 귀히 생각하며 아낀다. 어쩌면 그애는 나의 감정 - 이 짝사랑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며 굳이 말하고 싶지도 않다. 아주 커다란 캔버스 위에 옅은색의 나무를 하나씩 정성들여 그리고, 그 위에 색을 입히고 마르기를 기다리며, 다시 또 몇번을 나무 위 색상을 덧바르고 기다린다. 그렇게 자신의 감정들을 덮고 또 새로운 칠을 하며 작품을 만들고, 삶도 그렇게 살아간다. 가로수 길의 나무들이 한결같이 다 잘자라지는 않는다. 바람에 견디지 못해 가지를 부러터린 체 겨우 지탱하고 있는 것도 있고 두팔 벌린 모습으로 한없이 뻗어나간 것 들도 있다. 그렇다고 굳이 서로를 샘내거나 질투하지 않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래서 우린 나무를 닮고 싶어하나보다. 늘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그 모습 때문일 것이다. 숨기지 못하는 숨길 것도 없는 지금의 인생길이지만, 그 길은 누구도 아닌 자신이 만들었고 만들어 가며 또 만들어 갈 것이 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나도 한그루의 나무처럼 묵묵히 햇빛과 물과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굳굳히 자라며, 평안 할 거라 믿어본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그림
2019-03-04 플라멩고 춤
아름다운 무희가, 화려한 색상의 겹겹 레이스가 길게 늘어진 치마 한쪽을 손끝으로 살짝 잡은 체, 손과 손바닥에서 부딪히며 소리를 내는 둔탁한 악기로 박자를 맞추면서, 몸의 무게를 실은 발바닥으로 무대 위를 쳐가며, 투우사 복장의 멋진 남자와 함께 더없이 붉은색상과 강렬한 리듬에 맞추어, 온몸으로 추는 정열의 춤이 플라멩고라 상상했다. 스페인의 한겨울 저녁 칼바람을 맞으며 언덕 위를 굽이굽이 올라, 가파른 길이 문득 넓어진 곳에 멈춘 곳이 바로 플라멩고 공연장이란다. 오래되고 작은 허름한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벽을 휘감은 검정 벨벳 커튼은 오래된 먼지로 덧칠하여 회색빛이었으며, 무대 위의 장식들은 마치 옛날 시골 동네 조조할인 극장의 영화 간판처럼 유치하다. 뜻밖의 모습으로 - 상상과는 너무 다른 때문인지 - 왠지 슬픔이 올라온다. 깡마르고 40살은 넘은 듯하며, 삶의 피곤을 차마 씻지도 못한 탓에 화장이 하나도 얼굴에 붙지 않은 초라한 집시 여인이, 낡은 의자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다. 푸석거리는 머릿결에 반짝이는 값싼 머리핀으로 억지 붙들어 놓은 머리 모양과 조잡한 검정 레이스의 윗옷과 치마를 입은 무희는, 차가운 조명을 받은 채 기다린다. 뜻밖의, 단정한 회색빛 양복을 입은 앳된 집시 남자가 뱃속에서 나오는 듯 아릿한 노래를 시작하자, 의자 위의 그녀가 서서히 일어나 무대 위를 강하게 발바닥으로 쳐가며 온몸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느새 그녀의 왼쪽 귀 뒤편에 꽂힌 파란색 조화가 피어나고 그녀는 강렬하며 아름다운 무희로 변신하며 그 조잡해 보였던 검정 레이스들은 함께 값어치를 달리하며, 아프게 한다. 여자의 표정은 온 세상의 고뇌와 아픔을 혼자 짊어져, 마치 모든 것을 오늘 이 자리에서 기어이 버려 버리겠다고 작정한 거처럼 처절하다. 무대 밑 맨 앞자리에 앉은 난, 뜻 모를 슬픔에 흐느끼기 시작하고 춤에 취한 그녀는 먼 공간으로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어떤 순간, 나와 그녀의 눈이 마주치며 - 만났다. 숨이 멈추고, 춤 안의 모든 아픔과 슬픔이 그대로 전해지며, 나도 내 안의 것들을 끄집어 내고서는 함께 다른 공간을 넘어선다. 춤에 빠져, 세상 너머의 곳에 있는 그녀의 눈에서도 마침내 눈물이 보이고 난 그 의식 속에 같이 느끼며 함께 있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문득 고개를 심하게 돌리며 뒤돌아서는 그녀의 동작으로, 귀 뒤편의 파란색 조화는 끝내 무대 바깥으로 떨어져 나가고, 춤은 끝났고 그 순간들도 다 끝났다. 미처 눈물을 거두지 못한 난, 부끄러움 없이 그녀에게 작별했다. 그때의 아픔이,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정말 모르겠다, 왜 그 먼 나라의 느닷없는 초라한 집시의 춤 안에 하나가 된 채 떠돌았는지. 그리고 알고 싶다. 언제쯤 다시 찾아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번이라도 더 플라멩고 춤과 그녀를 만나야 한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9-02-05 여행의 잔재, 스페인에서
비우려고 떠났던 여행길이, 가방 아니 머리와 마음속 가득 채워진 체 더 많이 무거워져 돌아온다. 어떠하든 반드시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 여행이다. 그렇지, 되돌아오지 않으면 분명 그건 전혀 다른 단어로 표현되어야 할 것이니까. 돌아와야 한다는 걸 건드리지 않은 체, 살아오며 품었던 아련한 여러 상상을 나만의 방식으로 만나 보고자했다. 화려한 명성에 어울리는 장대한 궁전들과 끝없이 많은 성당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루고자 다른 이들의 목숨까지 바쳐야 했던 역사 속의 인물들과 수 없는 삶과 죽음의 사건 - 그 모두를 책상 앞에서 남들의 대화 속에서 또한 실제보다 멋진 사진 속에서 공부하고 들었고 보았던 것이기에, 이제는 만나볼 때가 되었다 싶어 한겨울 추위에도 잠시 서둘렀다. 모든 것들을 타인에 의해 고정된 탄성의 감동이 아니라, 생생하게 나의 눈을 통해 들어와 잠깐 머릿속에 머물다 바로 순식간에 가슴으로 내려와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아픔과 슬픔과 환희로 소리치며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첫 번째 드러난 만남은, 오히려 가늠했던 거보다 더 과장되게 웅장하였고 상상 속보다 훨씬 더 화려했으며 도무지 인간의 한계를 넘어버린 섬찟한 두려움 때문에 - 스스로의 무능함과 게으름과 자책으로 - 감정의 바닥까지 건드려져 긴 여행 내내 아팠었고 유독 심한 추위에 떨었었다. 언제부터인지, 아주 오래된 과거를 만나러 떠난다. 현재 아니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는 사라져 없어진 채 이름으로만 남겨진, 옛날의 누군가와 또 그 누군가가 살며 아끼며 간직했던 물건들과 그 안에서 무엇을 하며 어떤 삶을 살았든가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죽은 자의 이야기들이 살고있는 자들에게 끝없이 연결되어 그 역사로 말미암아 깨우치며 배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어느 소설 속 슬픈 여주인공이 그러더라 - 어쩌면 이 세상의 잊을 수 없는 것들은 언제나 뒤로 남겨져 있으며 그래서 과거는 버릴 수가 없는 것이라고. 사라졌다는 무의 아픔과 그 차가운 서산함으로 남겨진 것들에게서, 나는 여행 내내 무슨 의미를 어떻게 만났으며 또 지금은 무엇으로 나 자신의 생각과 살 속으로 남겨졌으며 - 오늘에서야 늦은 아침 커피 한잔을 든 체 - 과연 또 얼마만큼 달라져 가고 있을지를 묻고 있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의 욕망을 욕망한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2019-01-08 나비효과
아주 작고 갸날픈 나비의 날개짓이 파장을 일으키며 퍼져나가면, 먼 곳의 어느 곳에서는 폭풍우 같은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한다. 무심결의 작은 일들이 서로에게 원인과 결과가 되어 나중에는 아주 큰 일이 될 수 있으며, 사소한 사건 하나가 알 수 없는 미래에 상상도 못 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있는 작은 일이 어쩌면 시공간을 가로질러 멋지고 훌륭하며 아주 대단한 일이 될 수도 있다니 상상만 해도 신이 난다. 6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후, 날씨는 한여름을 맞을 준비로 뜨거웠고, 도로 위의 차들은 축제마냥 온통 밖으로 나온 듯 거리를 가득 메웠으며, 차 속의 우리는 한껏 들떠있었다. 1년에 한 번, 책 읽는 것과 글 쓰는 것을 사랑하며 삶 속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2박 3일 집을 떠나 스승을 모시고 온밤을 새우며 토론하는 날들이 있다. 열정 속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소박하나마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의 재정비를 끝내고, 마지막 날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 며칠을 함께 보낸 우리는 표현할 수 없는 감사와 사랑을 느낀 체, 넘치는 감정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마음들이었다. 비록 길 가득 막혀있는 다리 위 요금소의 지독한 혼잡함 속에 있었지만, 선선히 차선을 양보한 뒷 차에게 감사하기로 하였다. 우리의 커피값 대신, 통행료를 대신 내어주기로 순식간에 결정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내민 요금소 앞에서의 미소는, 6월의 더위보다 더 뜨겁고 아름다웠다. 짧은 순간을 끝으로 넓어지는 도로 밖으로 나온 우리를 향해, 뒤따라 달려온 차 속의 남자는 온몸으로 온손으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소리치며 손짓하며 얼굴 가득 행복과 감사로 웃고 있었다. 비록 순간으로 스쳐 지나갔지만 차 속의 우린 더 많은 행복과 감사를 받았으며 그때 알았었다 . 어쩌면 이 작은 베푸는 스침이, 나에게서 다른 이에게로 그리고 또 더 많은이에게로 더 멀리 퍼져 훨훨 날아가게 될 거라고. 결코 작은 일이라는 것은 없다. 기쁨도 사랑도 행복도 다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상처도 원망도 미움도 아주 하잖은 것에 매달리며 기억하는 것이다. 어떤 하나의 원인이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간단한 원리이지만, 나비의 날갯짓 같이 사각거리듯 작은 선한 일들은 언제 어딘가에서 더 큰 감사로, 보이지 않는 시공간을 넘어 누군가에게 아주 소중한 일이 될 거라 믿으련다. 그 믿음으로 오늘 하루의 작은 일에도 마음을 담고 행동하며 살다 보면, 문득 내가 한 작은 선한 일들이 언젠가는 멋지고 신기하며 상상할 수 없는 일들로 만들어져, 나비처럼 훨훨 날아 나에게로 되돌아올지도 모르니까.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9-01-08
소셜 워커로 일하고 있는 미국인 친구 신시아로부터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몬트레이의 마리나 바닷가에서 일주일간 지낼 수 있는 호텔을 예약하여 전액을 대불해 준 것이다. 꿈 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일터로 돌아온 지금에도 하얀 파도를 가르는 바다와 코끝에 스민 신선한 해초 내음은 큰 능력이 되어 눈 앞에 쌓인 일거리들이 힘들기는 커녕 즐겁게만 느껴진다. 부서진 물보라를 따라서 총총 걸음을 하던 작은 새들의 행진이 저녁 노을에 어우러진 절묘한 조화는 말그대로 환희였다. 이 멋진 겨울 휴가를 함께 누린 친구는 모두 다섯 명이었다. 직업도 각기 달라 발휘한 재능으로 우린 정말 깨알 같은 재미를 누렸다. 평소 어디를 가든지 잘 먹어야 한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우리는 유명한 식당의 요리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의 손맛에 황홀함을 감출 수가 없었고, 행여 절제 못하여 배탈이 날 세라 혹은 넘어져 다리라도 부러질까봐 세심하게 살펴주는 의사 친구를 믿어 맘놓고 뛰어 놀았다. 나이를 잊은 아줌마들의 해맑은 모습들의 순간에 집중한 사진작가 친구의 작품은 큰 즐거움이었으며, 평소 굳건하게 지킨 품위를 내던지고 자유로움 그 자체를 만끽하느라고 여기저기 벗어놓은 옷가지들과 과자 봉지를 기꺼이 즐거움으로 정리해준 착한 친구로 인해 청결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그렇다면 정작 나는 무엇을 했는가 묻는다면 나름 중요한 설거지를 담당했다고 말한다. 끼니때마다 싱크대에 쌓여 있는 그릇들을 기쁨으로 닦고 또 닦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다. 마음에 묵혀있던 찌꺼기까지 흐르는 물에 깨끗이 흘려 보낸다고 생각하니 절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게 되었다. 코드가 딱 맞아 떨어진 우리는 매일밤 찬란한 별을 바라보며 온탕과 수영으로 불어난 몸매를 잡아주었고 낮에는 모래 사장을 걷고 달리며 체력 단련에 전심을 다했다. 처음에는 숨이 차서 쓰러질 것 같았지만 일주일이 되가니 모래 위를 달리는 것이 구름 위를 걷는것 처럼이나 가뿐하게 느껴졌다. 여행은 바로 이 맛인 것 같다. 어느덧 두고온 가족도, 해결해야 할 고민 거리도 다 잊었다. 앞으로 살아갈 2019년 새해의 불투명한 염려까지도 오히려 자신만만해졌다. 이런 휴식이야말로 삶의 면역 보강을 위한 백신 치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을 떠나기 전날 우리는 아쉬움을 안고 모래 언덕길에 올랐다. 소금기를 먹고 자란다는 선인장이 즐비하다. 이슬과 바람만을 먹고 생존한 풀들은 어쩜 그리도 싱싱하고 강한지 신기하기만 했다. 오로지 사람의 발자국만으로 만들어진 선인장 길을 걷던 중 무심코 힘들게 밟아온 길을 뒤돌아 보게 되었다. 아주 좁은 길이었기에 중심을 잡고 걷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을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오솔길 같은 S자 길에서 뜬구름 없이 내가 걸어온 인생의 발자국이 클로즈업 되어 다가왔다. 결코 정로를 걷지 못하고 살았던 흔적이다. 아름다운 여행지에서 왜 하필 어울리지도 않게 완전하지 않은 세금보고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는지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진 않지만 나는 큰 숙제를 안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했다. 쫓지 않고 서지 않고 앉지 않아야 되는 이 양심의 문제 앞에서 이미 오랫동안 주저않아 버려 앉은뱅이가 된듯한 내 모습. '아는 것보다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어느 책자의 문구가 내 마음 안에서 소용돌이 친다.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12-06 가장자리에서
편안한 느낌이다. 그의 본뜻은 가운데의 중심이 아닌 둘레나 끝에 해당하는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란다. 알게 모르게, 나 자신을 모든 것의 중심 - 한가운데에 두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가진 것보다 훨씬 더 과장하여 포장하려 하기 위해, 덧없이 애쓰며 살고 있다. 그러면서 진정으로 소중한 작은 일상들을 하찮아하며 뭔지 모르는 강박감에 싸인 체, 유독 현실에만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12월 이라는 숫자 앞에서, 한번은 나에게 묻고 싶은 삶의 이유와 목적을 떠올리다, 언듯 이끌린 책의 끝 제목이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린다는 자체에 집중하여, 오랜 시간을 한자리에 앉은 채로 몰두할 때가 있다. 그 순간에는 다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으며, 다만 무언가 잘하고 있고 어딘가에 철저히 집중하고 있다는 황홀한 느낌에 빠져들며, 다른 어떤 것들도 눈과 마음에 넣지 않은 체이다. 그런 날의 그림은 당연히 망쳐진다. 주위의 다른 색과 형체의 조화 같은 것은 잊어버리고, 나의 그림이라는 사실에 온전히 중심에 두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그림은 색감도 형체도 그림 속에 넣으려는 감정도 다 제각각의 아우성에 의해, 함께 어우러지지 못한다. 어느 하나를 위해 나머지는 내려놓아야 하는 포기라는 기본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붓을 내려놓고 의자에서 일어나 몇 발자국 더 떨어져 멀찌감치에서, 어떻게 색감과 형체와 내 안의 감정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져 가고 있으며, 진심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어딘가에다 어떻게 더 집중해야만 하는지 수시로 봐가며 그려야만, 그림이 작품으로 완성되어, 언제나 조금은 덜 만족스럽지만, 마지막 사인을 하고 끝맺음을 하게 된다.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어느덧, 억지로라도 붙들고 매달렸던 것들을 뒤돌아보면, 새삼 그 어떤 것도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어떤 강한 높은 곳의 그분 덕분이었음을 깨닫는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끼기에 더이상 거드름 피우지 않아도 되는 시기에 이르면 우리는 해방감을 느낀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가장자리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또 다른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기대로,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거라며 시작한다. 삶 속의 좋은 것, 나쁜 것, 아름다운것, 추한 것 이 또한 나의 것임을 깨달으면서 "다 잘될 거야. 그리고 다 잘될 것이다. 모든 사물의 존재 방식 또한 다 잘될 것이다" 믿으면서 어렵고 힘들었고 가끔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더없이 소중하고 신비스러운 삶의 조각인 - 1년을 끝낸 후, 해야하는 마지막 단어는 감사합니다 바로 그 한마디였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8-12-06 지금은 공사 중
기자가 조각가에게 질문을 했다. "일생 동안 스테인리스 스틸이라는 재료를 탐구하여 조각에 놀랍도록 새로운 가능성을 제기한 당신의 작품들은 어떤 깊은 사유의 면모를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특징이 있다고 평을 합니다. 그러면 누구의 눈에나 판별 가능한 구상의 모습을 다른 자리로 탈피시키는 변화의 과정에 그 어떤 노하우가 있습니까?" 작가는 대답한다 "작업은 쥐어짜면 안돼요. 몸의 파장대로 천천히 움직여야 합니다. '내 것'은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다만 바깥을 통해 나를 보는 거지요. 내 안에 있는 것을 내가 물리적으로 나오게 할 순 없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을 이해하고 느껴져서 드디어 사람 같이 생각이 되어 그 재료가 당신의 마음 속 깊이 들어올 때에야 비로소 작품으로 변해있음을 봅니다. 무엇보다도 금속성의 물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어떻게 보면 차갑고, 또 어떻게 보면 따뜻하고 가벼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무겁기도 한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렵지요. 성질이 더러운 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툭 치면 어디로 튈지 모르니 찬찬히 달래가며 구슬려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할거야' 하고 마음 먹으면 말을 안 듣거든요" 이 작가의 답변대로 그는 사람들에게 그리 주목 받지 않는 스테인리스 스틸의 재료의 물성을 이해하여 우리의 일상 생활에 변하지 않는 재료들로 수 많은 곤한 과정을 거쳐 탄생시킨 모든 작품에는 결정적 순간이 녹아 있다고 고백한다. 즉 대상의 외면과 내면, 시간의 흐름과 주변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성, 장소성을 총체적으로 고려하면서 조각의 범위를 확장시킬 수 있는 질문을 이어간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애석하게도 작가의 심오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많은 작품들 중에 그나마 제주 조각공원의 '무제'나 포스코 센터, 통영의 남망산 공원에 있는 'flower' 그리고 순천의 분수공원과 국립 현대미술관에 전시돼 있는 조각품 정도는 거듭 설명을 들은 터라 느낌이 있긴 했다. 그의 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안내를 담당했던 도우미로서의 내 역할이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만 하다. 오늘 나는 한국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영원한 울림, 영은에 담다' 라는 타이틀로 도흥록 조각가의 주요 유작을 광주의 영은 미술관에 기증했다는 소식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으로 대중과 함께 오빠의 작품 진면목을 오래도록 공유하고 싶다는 전시회 취지도 함께 밝혔다. 활발한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올케 언니가 남편에 드리는 사랑과 격려의 마음 씀씀이 선물이다. 갑자기 떠난 오빠를 그리워하며 애써서 준비한 언니의 배려에 눈물이 왈칵 솟구친다. 오빠의 유작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 표를 끊어놓고 있자니 2년 전 그 때, 오빠의 마지막 말이 자꾸 맴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있다던 오빠는 어느 날 내게 전화를 했다. "잘 지내냐" "응. 오빠, 얼마 있음 오빠 얼굴 볼 수 있겠네.." "그런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지금은 내부 공사 중이거든" "준비가 다 끝났다며? 근데 무슨 수리를 또 해야 돼?" "내 몸의 오장육부를 공사하고 있어, 간암 말기래. 가망이 없다지만…." 예술가는 죽어가는 비통한 사실을 이렇게 알렸다. 그리고 덧붙인 말은 "얘야, 너 어렸을 때 참으로 착했는데 미국 가더니 너무 독해졌더라. 내일 일은 모르는데 그저 마음 비우고 살아라. 오빠는 인생이란 내 작품처럼 늘 공사 중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지 뭐냐…. 그리고 울지 말아라" 놀이터로 알고 드나들었던 오빠의 넓은 작업실이 눈에 들어온다. 각종 금속 기구로 가득 찬 공간 안에서 오빠는 쇠를 갈고 자르고 용접으로 붙이느라 정작 내가 들어서도 알아채지를 못했다. 뭔가의 조각에 몰입돼 혼과 영이 하나가 된 모습에는 조용히 곁눈질 하고 있는 나마저 재료를 통해 재현한 대상에 대해 저절로 숙고하게 만들었던 기억이다. 그 때의 '사과, 퍼즐, 바이올린'을 조각하던 오빠의 현란한 손 놀림이 나비가 되어 훨훨 하늘을 난다. 비행기표를 앞에 놓으니 2년 전 오라버님의 마지막 말이 자꾸 맴돈다 "얘야, 내가 지금은 오장육부 수리 중이지만 어찌 보면 인생자체는 늘 공사 중이야. 소망이라면 인간에겐 영혼이란 게 있어서 인생은 미완성이 아니라는 얘기지. 동생아, 울지 마라"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11-01 비내리는 가을에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여름 내내 먼지가 한가득 쌓여 있든 지붕도 미처 거두지 못한 거미줄이 걸려있는 진회 색빛 벽도 왠지 초조한 내 마음도 다 축축해진다. 가을이 익어가면서 단풍도 익어가고 사랑도 그리움도 익어가고 덩달아 나도 익어가고 있다. 비가 오는 목요일 오후, 차를 타고 먼 길을 나섰다. 가을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급히 가방을 챙겨 떠나는 길이다. 북쪽으로 끝없이 올라가며, 언뜻 스쳐 지나가는 전혀 모르는 시골 동네의 고적한 골목길에서, 작고 낡은 오래된 대문 앞에 놓인 여러 주홍빛깔의 크기가 다른 호박들과 노란빛의 국화 화분들을 바라보며 그냥 가슴이 설레인다. 왜 가을은 이렇게 작은 것조차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며칠이 지나야 살던 곳으로 돌아갈 거라는 초조함이 더해져, 얼른 집으로 돌아가 나도 대문 앞을 온통 가을 색상으로 장식할 거라며 마음이 서둔다. 비가 내리며 더없이 깨끗하게 씻겨져 내린 나무들의 아름다움을 더 는 참을 수 없어 차를 세우고, 길 한 켠에서 올려다보는 가을의 단풍들은 마치 그림엽서 속 모습으로 나란히 긴 줄을 서 있다. 처음에는 약간 수줍은 듯 겁먹은 듯, 옅은 노란색으로 시작한 장난이 어느새 신이 난 듯 점점 더 짙게 칠해지면서, 드디어 주홍색에 빨간색까지 덧칠하며 온통 물감 놀이 중이다. 이 멋진 색상들을 미처 보지 못했다면 아마 난 정말 가을의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였을 거라는 생각에, 게으름으로 망설인 나를 억지로 끌고 함께 떠난 이들에게 감사해한다. 비록 집 떠난 고생의 첫날은 생각지 못한 추위에 떨었었고 어떤 저녁은 배를 굶으며 맥주 한잔으로 잠들었지만 그래도 뜻하지 않은 가을을 만났었고 설레였다. 이제는 돌아와 이 가을을 과거형으로 바꾸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떠나는 것은 아주 아쉽고 다시 돌아오는 것은 참으로 반갑다. 떠나지도 돌아오지도 않은 체, 언제나 변함없이 늘 곁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함께 가고 있는 - 무덤덤한 사랑의 표현조차도 제대로 못한 - 오랜 세월 지켜주는 벗들과, 이렇게 비가 오며 가슴 설레며 시린 가을과, 짙은 색깔의 화려한 단풍과, 여러 주홍빛깔의 호박들과 노란 국화들을 배경으로 마음속 사진을 찍으며, 또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으로 인생 사진첩에 가지런히 붙여 놓는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8-11-01 BUDDY에게 띄우는 편지
나는 이 친구를 열렬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나의 사정거리에 있어야만 안심이 된다. 가까이 마주하고 있으면 함께 있는 것에 무덤덤하고 간혹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달이 날만큼 무지하게 보고 싶어지는 그런 친구다. 그렇다고 특별히 잘 생긴 것도 아니요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어서 딱히 예뻐할 구석도 없는데 18년을 함께 살았다. 그런데 난 요즘 이 친구에게 약간의 권태감을 느끼고 있다 도대체 감정이란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싫든 좋든 한 집에 살면서 뭔가 상대의 존재가치를 인정해 줘야 하는데 이 친구는 나를 완전 무시한다.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고 밥을 차려 줘도 고마워하지 않으며 사랑한다고 쓰담 해줘도 미동도 없이 눈만 내리깔고 있다. 슬프다 못해 화가 나지만 나는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얼마 전 한달 간 여행을 다녀 올 일이 있었다. 그래서 부득불 그를 돌봐주는 기관에 맡겨야 했다. 이처럼 오랫동안 떨어지는 것이 처음이라 걱정이 되어 평소 내가 입고 있던 셔츠 한 장을 함께 싸서 보냈다. 여행 후 돌아와 보니 그는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 응급 치료를 받아야 만 했다. 의사의 진단으로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거식증까지 겹쳐서 위험하다고 말했다. 혹시 모를 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까 싶어 넣어 두었던 셔츠 한 장은 아예 흔적도 없이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으니 그 심정이 오죽 했으랴. 곁에 있어도 더욱 그립기만 했던 우리의 옛날을 돌아보며 시월의 마지막 밤에 네게 편지를 띄워본다. 친구야 너도 그 날을 기억하지?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은 5월5일이었어. 윤기 나는 까만 털에 콧잔등과 눈 가는 흰색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고 모유를 충분히 먹고 자랐다는 너는 아기 곰처럼 뒤뚱거렸지. 네 아빠는 유능한 사냥꾼이었고 네 엄마는 양치는 일을 멋지게 해냈다고 들었는데 넌 어쩐지 어리 버리 해보였어. 그래서 지어준 이름이 버리란다. 유년시절에도 너는 에너지가 지나치게 넘쳐서 늘 말썽을 피우며 쏘다니길 좋아했지. 세 번씩이나 담장 밑 땅을 파고 가출을 해서 애를 먹였지. 고민하던 나는 할 수없이 네게 중성화 수술을 해 줄 수 밖에 없었어. 그 일이 지금까지도 너무 미안하기만 해. 네가 해바라기처럼 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너의 주인으로 군림한 나는 너의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을 기뻐했어. 너의 기분과 상관없이 최대한 나를 즐겁게 해주길 바랬지. 그것도 사실은 많이 미안해. 버리야 이젠 내가 너의 기쁨이 될 거야. 나의 남은 사랑을 다 네게 줄께 . 권태감이란 힘이 빠져 아무런 감정표현을 못하는 있는 너에 대한 나의 투정이었어. 지금은 너의 눈이 흐리고 이도 다 빠졌으며 다리도 절고 뼈마디가 온통 쑤시지? 지금 이 대로의 네 모습을 나는 여전히 아끼고 사랑한단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 '버리 엄마' 로부터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10-02 복어요리 드세요
"이럴 땐 뭘 먹을까?" 한국 TV 의 케이블 방송에서 인기를 끌었던 개그 푸드 토크쇼의 화두다. 전국에서 배달된 사소한 고민들을 네 명의 MC가 풀어나가는 먹방 예능프로그램을 내가 유독 좋아한 이유는 간혹 세상 살 맛이 나지 않을지라도 잘 먹어야 한다는 데에 코드가 딱 맞아서다. 그래서인지 나는 속상한 일이 있거나 아플 때면 오히려 더 잘 해 먹는다. 그러니까 입맛이 없으면 밥맛으로 먹고 밥맛이 없으면 씹는 맛으로라도 먹는다는 얘기다. 비록 입 안에 넣은 음식이 모래알 같을지라도 꼭꼭 눌러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깨졌던 마음이 봉합이 되고 상한 기분이 다스려진다. 이렇듯 먹는 일이 사명이라면 음식을 만드는 일은 내게 있어 명상이라 할 수 있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 식 재료를 구입하고 다듬고 굽고 써는 과정에서 명상을 할 때 나온다는 세라토닌과 옥시토신 같은 사랑의 신경물질이 생성되어 세포 하나하나를 터치하고 있음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충만한 기쁨으로 내가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만든 음식은 상승된 엔도르핀을 전달하는 명약이 되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즐겨 보는 '밥 블레스 유'의 TV 프로의 관점은 나의 주파수와 동일하다. 연인과 이별했을 때, 갑작스러운 직장에서의 해고와 사람 관계에서의 오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돌연 사고 등 삶이 외롭고 지쳐 갈 때는 과연 무엇을 먹고 기력을 찾을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며 연구해 가는 이 요리 탐방의 주제가 참으로 흥미롭다. 이처럼 먹거리로 마음을 치료하는 것도 있지만 일본의 신토쿠 농장의 유래는 한 편의 동화처럼 아름다워 언제나 내 기억 속에 있다. 특별한 치즈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이 농장은 사회에서 소외 당한 무능력한 사람이나 장애인, 알코올 중독자나 비행청소년만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채소 가꾸기, 소 젓 짜기 쓰레기 청소 등의 자발적인 참여의식을 심어주어 사회와 인간관계 등에서 받은 상처를 백 프로 치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것처럼 한국의 한 농가에서도 '드림 뜰 힐링 팜' 이라는 농장을 만들어 누구든지 직접 농사를 체험케 하여 흙을 통한 자연원예치유를 하고 있다는 보람찬 얘기도 들었다. 짧은 인생, 그리 길지도 않은 세월을 걸어가는 우리의 여정에는 이런 일 저런 일로 상처투성이다. 문득 복어요리를 잘 하신다는 어떤 분의 조언이 떠올랐다. 복어는 독을 잘 제거하기만 하면 어떤 생선보다 맛있고 영양이 가득하단다. 상처란 그 사람을 묶어두는 족쇄며 인생의 흠이다. 그래서 그분은 마음을 상하게 하는 모든 일들은 자신을 성숙하게 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디딤돌이라 생각하여 매일 목숨 걸고 복요리 하듯 독을 잘 발라낸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나만의 복어 요리 팁은 무엇일까? 나는 그때 그때마다 맛있는 요리를 해서 잘 먹어준다. 눈물 콧물 흘리며 먹는 일에 충실하다 보면 어느새 억울하고 분한 감정들이 별것도 아닌 것처럼 스르르 녹아 내림을 알게 된다. 혹시 즐거운 일이 있으신지요? 제가 몸에 좋은 쌉쌀한 산채요리로 기쁨이 소멸되지 않게 해드릴게요. 마음이 슬프십니까? 이럴 땐 달달 한 쌀강정을 만들어 드리지요 아님 혹시 인생이 지루하신가요? 사이다처럼 톡 쏘는 새콤달콤한 해물 요리를 대령하여 마음이 환하게 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행여 거듭된 실패로 지금 눈 딱 감고 지구에서 뛰어 내리고 싶은 심정이신가요? 제게 비장하게 숨겨둔 히든 카드 요리가 있습니다. 복어요리 드시러 오세요. 반드시 파이팅 입니다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10-02 거꾸로 본 세상
머리를 아래쪽으로 둔 체 세상을 바라보니 전혀 다른 모습이다. 매일 곁에 있든 똑같은 것들이 새삼 낯설고 이상하다. 오랫동안 허리가 좋지 않아 조심하며 살고 있지만, 가끔 심한 통증이 오면 평소의 사소한 일들이 아주 큰 일이 된다. 그런 때에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부터 시작하여 세수하고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는 작은 일상의 일들이 대단한 것들로 변신한다. 늘 하든 그대로 하면서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자랑할만한 일이었든 것이다. 우연히, 허리를 붙들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모습을 본 누군가가 거꾸로 서 있는 운동을 하면 좋다기에, 매일 아침저녁, 기구를 이용하여 머리를 땅 쪽으로 내리는 운동을 시작하였다. 처음엔 무서움과 어지럼증에 눈을 감고 있었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저절로 눈을 뜨고 뒤집힌 세상을 본다. 언제나 벽에 걸려 있던 그림들과 커다란 거실의 문짝과 거미줄이 보이는 높은 천장을 한 번도 눈여겨 본 적이 없었는데 새롭다. 그렇지, 세상은 이렇게도 볼 수 있는 것인데 난 앞으로 바라본 세상만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왔던 것이다. 갇혀있는 고정관념과 선입감 때문에 오히려 세상을 한쪽으로만 보면서. 알고 있으며, 배웠으며, 경험한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열려있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하는데, 나는 습관처럼 누군가를 처음으로 만나면 제일 먼저 그 사람의 옷차림과 얼굴 모습과 말투등으로 짐작하고, 물건 하나를 선택할 때에도 그것의 가치보다 성급하게 상표를 보고 결정한다. 세상 속의 사람이나 사물이나 모든 것은 다 변해가는데 여전히 난 고정관념에 묶여 멈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어느덧 몇 달 동안 얼굴을 땅 쪽으로 놓고 있는 운동 덕분인지 허리는 조금씩 나아져 가고, 난 더 자연스럽게 뒤집혀 있는 사물들을 본다. 그러면서 조금씩 내 인식 안에 굳어져 선입감으로 마주치든 일상 속의 모든 것들을, 새로운 각도로 다르게 볼 여유도 생겨간다. 변하지 않으면 고인 채로 썩어간단다. 세상의 흐름에 굳이 함께 따라갈 이유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변하고 있고 어떤 새로운 인식들이 달라져 가고 있는지, 열린 마음과 눈으로 바라보며 사는 훈련과 연습도 필요한 거였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8-09-02 잠 못드는 밤에
잠이 오질 않는다. 할수없이 일어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보니, 커다란 나무들에 가려졌지만 반쪽짜리의 달과 총총한 별들이 반짝인다. 오랜만에 올려다 보는 밤하늘이다. 집 기둥 모퉁이에 걸어놓은 노란색 풍경은 작은 바람에도 얇은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고, 어디선가 먼 고양이의 울음 소리도 들린다. 뒷집 수영장 물 소리도 들리는게 아마 작은 짐승들이 그 속에서 놀고 있나 보다. 평화로운 한밤중의 풍경이다. 다만 혼자 여러생각에 넘쳐 잠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밖으로 나와 있으니 머리도 마음도 맑고 시원하다. 언제나 매달 중순이면,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 고객들에게 보낼 청구서를 만들어 보내 그 한 달을 마무리한다. 일을 계속하는 보람도 있지만 가끔은 힘들고 어려운 오늘처럼, 유난히 뭔지 모르게 잘 풀리지 않는 날도 있다.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고 있으면서, 갖가지 생각들은 엉뚱한 예전 고등학교때 친구들이랑 몰래 갔었던 해수욕장 근처의 결핵 요양병원 골목에서 헤매이고, 눈은 숫자의 더하기와 빼기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실수투성이로 엉망진창인 것이다. 넘치는 많은 생각들을 멈출 수 없어 차라리 하던 일들을 멈추고 집으로 일찍 돌아와 버렸다. 그냥 그 생각의 끝을 따라 어디까지인지 가볼까 하다, 이럴 때는 다 놓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복잡하고 어지러운 많은 생각들을 다 던져놓고 잠시 다른 것들을 바라보다 보면, 세상 어려운 일들도 어쩌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편안해지며 어쩌면 새로운 평화스러운 밤을 보내게 된다. 밤하늘, 나무, 달, 별, 풍경 소리, 고양이 소리, 물소리,,,,,, 무언가 잘 풀리지 않거나 매일 하고있는 일상들이 실타래처럼 엉켜 복잡할 땐,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이라도 고개 들어 하늘도 보며 크게 숨도 쉬어 보면서 쉬었다가 가보자. 그렇다고 크게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을 거니까. 조금 늦고 서툴러도 괜찮을 거다. 분명 내일 아침 일어나면, 꼭 해야만 하는 많은 청구서의 숫자가 잘 맞아 마감 날짜도 어기지 않게 될 것이며, 청구서 위의 많은 이름도 전혀 틀리지 않을 것이며, 하나씩 제대로 봉투에 잘 넣고 각각의 우표를 붙인 체 날아가, 새로운 다음 달의 나의 일을 만들어 주며, 그것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늘 그랬듯이. 또 가끔은 많은 생각들 때문에 미처 잠들지 못한 체 서성이다, 문득 밤하늘의 달과 별도 보며 또 한편으로 안도할 것이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8-09-02 파라다이스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나는 창가에 기대어 선다. 손 끝에 전해지는 머그잔의 따뜻함에 기분이 좋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싱그러운 시간, 작은 뜰 안으로 빛을 따라 들어온 달팽이가 풀잎 끝에 달려 있는 이슬을 마시고 있다. 어디선가 갑자기 사마귀 닮은 곤충 한 마리가 튀어 오르자 경쾌하게 아침 체조를 하던 무당벌레는 놀라서 그만 뒤로 나동그라진다. 이 아침에 나는 살아 숨쉬고 있는 작은 생명체들을 들여다보며 그 신비로움에 마음이 들떠 있다. 지금은 뜰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버려진 맷돌을 찾아오는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평소 맷돌은 작은 분수대였는데 날이 뜨거워 물이 증발해 버리자 어느 날부터인가 파충류가 방문하기 시작했다. 이곳 캘리포니아는 지천에 깔린 게 도마뱀이라 발에 채여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큰 성이라 여겨졌을 분수대 안에서 한 쌍의 연인들은 매일 꿈결 같은 허니문을 즐기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멋진 맷돌 궁궐에서 앙증맞은 공주와 왕자를 만들어 냈다. 네 마리의 가족들은 어찌나 맷돌성을 좋아하는지 여름 내내 부지런히 인 엔 아웃을 한다. 문득 내가 작은 뜰 안에 숨어 있는 요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공상이 나는 매우 즐겁다. 내가 가끔 준비 없이 집을 훌쩍 떠나 다녀오는 곳이 있다. 스캇벨리에 있는 레드우드 숲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산새들의 지저귐과 삼단 폭포에서 떨어지는 맑은 물소리가 제일 먼저 나를 반긴다. 넓디 넓은 산등성이 곳곳에 가득히 피어있는 수국과 민들레, 맨드라미와 들꽃들의 향연은 그리운 고향집 엄마품에 안긴 것처럼 포근하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빽빽한 레드우드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신선함을 깊이 들이 마시는 순간 이곳까지 버겁게 싸 짊어지고 온 등 짝의 근심 덩어리 보따리가 솜털처럼 가벼워짐을 느끼게 된다. 살면서 그렇게나 힘들었던 내려놓음의 문제들이 일순간 안개가 걷히듯 사라지자 텁텁한 생각들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이다. 때때로 내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나를 죽이기 위해서다. 여전히 팔팔하게 활개치고 있는 못된 성깔들을 죽이지 않고는 결코 만족함이 없어서다. 현재 주어진 환경과 형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는 커녕 더 못가져 안달하는 것이 문제다. 어느덧 자연이 주는 기쁨과 기운으로 새로운 힘이 생기면 거룩할 정도로 내가 착해진다. 그러니까 내 눈 안으로 들어온 세상은 예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보고 듣고 만지고 느껴지는 것 모두가 파라다이스다. 숙제처럼 남아있는 껄끄러운 사람과의 관계고리에서도 용서 못할 일이 전혀 없으니 잠시동안 머물다 가야 할 나그네 인생길에서 오직 사랑만을 퍼 주고 싶은 열정으로 삶에 포커스를 맞추게 된다. 어느새 커피 잔이 다 비워졌다. 나는 다시 향기로운 커피를 내리면서 나의 집 작은 뜰 안에서 단지 하루의 일용할 양식에 기뻐하는 귀여운 생명체들을 감상하며 낙원에 빠져든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다.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08-07 바다와 아버지의 추억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한국의 남쪽 끝 작은 바다가 있는 곳이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 사시다 전쟁을 피해 내려온 아버지는 낚시하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낚시하러 가는 아버지를 따라 짧디짧은 단발머리 팔랑거리며 두 손 꼭 잡은 채 따라나서면, 이 세상 부러울 것도 원하는 것도 없이 행복했었다. 엄마 없이 아버지랑 단둘이서만 있는 것도 좋았었고, 향긋한 파이프 담배 물고서 바다만 바라보며 아무런 말 없이 앉아 있는 아버지의 냄새를 바람결에 마음껏 맡을 수 있는 것도 참 좋았었다. 늘 따라나섰던 그 바다는, 어릴 적의 내 마음처럼 편안하며 거의 파도가 없는 잔잔한 호수 같은 곳이다. 통금이 있던 시절이라, 생선을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어떤 여름날, 그 비린내 나는 선창가 구석에서 신문지 몇 장을 겨우 덮고 잠들었다가, 잠이 덜 깬 체 새벽 아침 햇살에 한가득 잡혀있는 파란 빛깔의 생선들을 보며 무서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푸르디푸른 생선 비늘이 햇빛에 반사되어 내 눈을 찌르는 그때의 모습은, 가끔 꿈속에서도 나타나며 그 눈부신 푸른 빛으로 선명하다. 그 바다는 이제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 내 삶 속에 남겨져, 늘 반짝이며, 늘 눈부시며, 늘 평화로운 이름으로 새겨져 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하나의 은신처로 만들어 있어, 언제나 자유로이 숨기도 하며 울기도 하며 위로받으며 살아간다. 가끔 산다는 것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누군가의 진정한 위로가 필요한 때면 난 무엇보다 바다가 먼저 보고 싶다. 정말 그곳에 가기만 하면, 늘 언제나 내 편이셨든 아버지가 계시면서 내 손 잡고 웃어주시며 "괜찮다, 괜찮다" 해주실 것만 같으다. 어른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와지니, 그저 나 하나 있는 그대로 봐주는 영원한 나의 편이 그립다. 그 옛날처럼 제대로 - 어리광 한번 크게, 투정 한번 크게 - 콧등에 잔뜩 주름 잡아가며 부려보고도 싶다. 아주 먼 곳으로 이사를 오고 또 더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그 고향보다, 이제는 가깝지만 더없이 넓디넓은 태평양 바다를 찾아간다. 짙은 회색 바다의 색깔과 끝없이 밀려오는 거센 파도와 그 기다란 띠를 두른 하얀색의 거품들은 내 마음속의 어릴 적 고향의 바다가 아니다. 그렇지만 어릴 때와 다 자란 지금의 나처럼, 바다도 또 그렇게 뚜렷이 전혀 다른 두 가지의 모습으로 나누어져 기다리고 있다. 내가 여전히 똑같은 나인 거처럼, 바다도 그렇게 영원히 바다일 거라 생각하며 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들을 찾아간다. 이젠, 아버지보다 어느듯 더 나이가 들어 버렸지만, 무엇보다 그 잔잔하고 평화로운 바다를 내 마음속에 만들어 주고 가신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초여름 오후의 나른함에 기지개 펴본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8-08-07 바람 바람 바람
"야 야 야,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야 야 야…" 매일 90도가 넘는 폭염으로 누구라도 마음과 몸이 지쳐 가고 있는 이 때에 남과 달리 나는 노래 가사처럼 마음도 하나요 느낌도 하나인 일에 흠뻑 빠져 회춘한 나날이다. "사랑에 무슨 나이가 있나요 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 눈물이 나네요 야 야 야.." 참으로 묘한 매력으로 와 닿는 노래가락을 흥얼거리며 도착한 곳은 준바 댄스교실, 문밖으로까지 흘러 나오는 빠른 템포의 음악이 벌써부터 내 몸을 들뜨게 한다. 학생 수는 19명, 전체가 아줌마들인데 엄마 손을 잡고 따라온 6살 아이의 춤 솜씨는 절로 'Bravo'가 외쳐진다. 동양 사람은 오직 나 하나, 비록 내 나이가 가장 많지만 전혀 기죽지 않는다. 몸에 착 붙는 래깅스 대신 언제나 꽃무늬 캉캉 치마를 입고 수업에 임하는 나의 삼바 댄스실력은 국적을 브라질로 오해할 만큼 클래스 안에서 인기 짱 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나 보다. 한 시간 동안 멈춤이 없이 칼로리와 지방 연소를 위해 미친 듯이 전신을 흔들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몸의 균형과 심폐 지구력이 강화되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고 어떤 일에든 자신감이 넘치게 된다. 평소 부끄럼이 많고 몸치였던 내가 큰 용기를 내어 생소한 스포츠로 타인종과 친근하게 어울려 즐거움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이 노래 덕분인 것 같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준바 스포츠 댄스로 온 몸이 땀에 절어지면 바로 수영장으로 달려간다. 수영은 전혀 못하지만 WATER AEROBICS 을 하는 것이다. 이것 또한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스포츠다. 물 속에서는 아무리 난리를 쳐도 다칠 염려가 없다. 야외라서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클래스 인원은 30여명, 풍채 좋은 남녀 어르신들인데 이곳에서도 한국 사람은 오직 나 뿐이다. 준바 댄스에 비하면 쉬울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물 속에서 앞으로 달리거나 뒤로 걷는 것 그리고 운동기구를 가지고 동작을 따라 하는 것은 마디마디 관절운동이라서 에너지가 총동원 된다. 때때로 나는 강사의 눈을 피해 내 임의대로 칸추리 리듬에 맞춰 물 속에서 우리 고유의 태권도와 강강수월래의 춤을 추는 것에 쏠쏠한 재미를 느끼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 모두가 뒤집어지는 일이 있었다. 팝송이 아닌 싸이의 '강남 스타일' 노래를 에어로빅 음악으로 틀어준 것이다. 전부다가 미국인인 학생들은 이 음악에 신바람이 났다. 선생님의 랩에 따라 물 안에서 말춤을 추며 입을 모아 "오빤 강남스타일"을 부르니 수영장 물이 바다가 된 듯 파도가 넘실거린다. 멈출 수 없는 후렴구의 마력에 끌려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오 오 오 오…오빤 강남스타일"을 힘차게 합창하는 은발의 인어들은 황금빛의 석양과 대비를 이루어 싱싱한 청춘이다. 아, 세월을 비껴간 나는 어떡하지? Eh, Eh, 섹시 레이디가 돼 버린 내 마음에도 심장이 뜨거워지는 바람, 바람이 분다.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07-04 레드우드 숲에서
늘 한결같은 삶을 사는 것은 진정 축복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체, 있는 그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애쓰고 수고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잦은 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내 자리를 지키며 꿋꿋이 자라고 있는 나무들처럼, 자신의 몫을 다하면서 세상의 숲을 만들고 어우러지면서 그렇게 같이 가는 것이다.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레드우드 숲이 있다. 우연히 따라나선 길에서 만난 이 수많은 나무들은 얼마나 키가 크고 높은지 거의 하늘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울퉁불퉁 거치른 나무의 덮개인 겉껍질은 붉은 황토색으로 두껍고 단단하게 적당히 말라 있다. 너무 긴 키 때문인지 괜스레 애처롭다. 그 나무들은 가까이에서 두런거린 채 마주하며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듯 다정한 모습으로 옹기종기 모여, 넓고 빨간색의 커다란 숲을 이룬체 살아간다. 나무와 나무들의 공간이 좁아 단숨에 그 숲을 건너가는 것은 힘들다. 바람이 불어오면 그 기다란 나무들이 함께 작은 미동으로 리듬을 맞추면서 윗가지들이 흔들린다. 쏴 하는 바람으로 흔들리는 나무의 향기가 코에 닿으며 순간으로 보여지는 조각 하늘빛이 유난히 푸르르다. 그 하늘을 보기 위해 고개를 젖힌 나도 덩달아 그 바람을 느끼며 작게 흔들린다. 그 순간 나도 나무이고 싶다. 이들은 날 때부터 뿌리가 깊지 못한체 키만 멀뚱히 자라는 운명으로, 작은 바람에도 곧잘 쓰러지곤 해서, 곳곳에 넘어져 누운 채로 기다란 몸통의 배를 내놓고 있는 나무들도 있다. 숙명적으로 뿌리가 깊지 않음을 알기에, 수분과 영양분도 아껴가며, 서로 서로가 가까이에서 기대고 살아야만, 오래오래 기다란 몸을 키우면서 자신이 지켜내며 끝내야 하는 몫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이다. 함께 나누며 의지하며 살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본능을 터득한 나무들만이 살아남아서, 긴 세월 동안 커다란 숲을 이루면서 오늘도 나 - 레드우드를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너가 없으면 나도 없다는 삶의 이치를 깨달은 나무들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도 늘 알게 모르게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고 있다. 백 년을 천년을 살 거처럼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고 또 사랑도 주고받으며, 스스로 수분과 영양분을 만들어 가면서 살아간다. 늘 곁에 있으리라는 당연함으로, 피차의 사과와 용서도 없이 지내다, 어느날 문득 바람에 쓰러진 빈자리의 누군가를 보게 되면 후회한다. 조금만이라도 더 많이 사랑해줄 걸 하며, 제발 이 후회를 잊지 않고서 기억하며 살아야지 하면서도 다시 그 당연함으로 외면한다. 비록 더없이 연약하며 또 세찬 바람에 잘 흔들리며 넘어지는 얕은 뿌리를 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함께 기대며 서로를 보듬고 사랑하며, 끝없는 새로운 탄생과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다시 세대를 넘겨 가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