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

 
2018-12-06 가장자리에서
편안한 느낌이다. 그의 본뜻은 가운데의 중심이 아닌 둘레나 끝에 해당하는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란다. 알게 모르게, 나 자신을 모든 것의 중심 - 한가운데에 두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가진 것보다 훨씬 더 과장하여 포장하려 하기 위해, 덧없이 애쓰며 살고 있다. 그러면서 진정으로 소중한 작은 일상들을 하찮아하며 뭔지 모르는 강박감에 싸인 체, 유독 현실에만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12월 이라는 숫자 앞에서, 한번은 나에게 묻고 싶은 삶의 이유와 목적을 떠올리다, 언듯 이끌린 책의 끝 제목이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린다는 자체에 집중하여, 오랜 시간을 한자리에 앉은 채로 몰두할 때가 있다. 그 순간에는 다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으며, 다만 무언가 잘하고 있고 어딘가에 철저히 집중하고 있다는 황홀한 느낌에 빠져들며, 다른 어떤 것들도 눈과 마음에 넣지 않은 체이다. 그런 날의 그림은 당연히 망쳐진다. 주위의 다른 색과 형체의 조화 같은 것은 잊어버리고, 나의 그림이라는 사실에 온전히 중심에 두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그림은 색감도 형체도 그림 속에 넣으려는 감정도 다 제각각의 아우성에 의해, 함께 어우러지지 못한다. 어느 하나를 위해 나머지는 내려놓아야 하는 포기라는 기본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붓을 내려놓고 의자에서 일어나 몇 발자국 더 떨어져 멀찌감치에서, 어떻게 색감과 형체와 내 안의 감정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져 가고 있으며, 진심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어딘가에다 어떻게 더 집중해야만 하는지 수시로 봐가며 그려야만, 그림이 작품으로 완성되어, 언제나 조금은 덜 만족스럽지만, 마지막 사인을 하고 끝맺음을 하게 된다.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어느덧, 억지로라도 붙들고 매달렸던 것들을 뒤돌아보면, 새삼 그 어떤 것도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어떤 강한 높은 곳의 그분 덕분이었음을 깨닫는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끼기에 더이상 거드름 피우지 않아도 되는 시기에 이르면 우리는 해방감을 느낀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가장자리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또 다른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기대로,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거라며 시작한다. 삶 속의 좋은 것, 나쁜 것, 아름다운것, 추한 것 이 또한 나의 것임을 깨달으면서 "다 잘될 거야. 그리고 다 잘될 것이다. 모든 사물의 존재 방식 또한 다 잘될 것이다" 믿으면서 어렵고 힘들었고 가끔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더없이 소중하고 신비스러운 삶의 조각인 - 1년을 끝낸 후, 해야하는 마지막 단어는 감사합니다 바로 그 한마디였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8-12-06 지금은 공사 중
기자가 조각가에게 질문을 했다. "일생 동안 스테인리스 스틸이라는 재료를 탐구하여 조각에 놀랍도록 새로운 가능성을 제기한 당신의 작품들은 어떤 깊은 사유의 면모를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특징이 있다고 평을 합니다. 그러면 누구의 눈에나 판별 가능한 구상의 모습을 다른 자리로 탈피시키는 변화의 과정에 그 어떤 노하우가 있습니까?" 작가는 대답한다 "작업은 쥐어짜면 안돼요. 몸의 파장대로 천천히 움직여야 합니다. '내 것'은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다만 바깥을 통해 나를 보는 거지요. 내 안에 있는 것을 내가 물리적으로 나오게 할 순 없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을 이해하고 느껴져서 드디어 사람 같이 생각이 되어 그 재료가 당신의 마음 속 깊이 들어올 때에야 비로소 작품으로 변해있음을 봅니다. 무엇보다도 금속성의 물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어떻게 보면 차갑고, 또 어떻게 보면 따뜻하고 가벼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무겁기도 한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렵지요. 성질이 더러운 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툭 치면 어디로 튈지 모르니 찬찬히 달래가며 구슬려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할거야' 하고 마음 먹으면 말을 안 듣거든요" 이 작가의 답변대로 그는 사람들에게 그리 주목 받지 않는 스테인리스 스틸의 재료의 물성을 이해하여 우리의 일상 생활에 변하지 않는 재료들로 수 많은 곤한 과정을 거쳐 탄생시킨 모든 작품에는 결정적 순간이 녹아 있다고 고백한다. 즉 대상의 외면과 내면, 시간의 흐름과 주변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성, 장소성을 총체적으로 고려하면서 조각의 범위를 확장시킬 수 있는 질문을 이어간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애석하게도 작가의 심오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많은 작품들 중에 그나마 제주 조각공원의 '무제'나 포스코 센터, 통영의 남망산 공원에 있는 'flower' 그리고 순천의 분수공원과 국립 현대미술관에 전시돼 있는 조각품 정도는 거듭 설명을 들은 터라 느낌이 있긴 했다. 그의 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안내를 담당했던 도우미로서의 내 역할이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만 하다. 오늘 나는 한국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영원한 울림, 영은에 담다' 라는 타이틀로 도흥록 조각가의 주요 유작을 광주의 영은 미술관에 기증했다는 소식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으로 대중과 함께 오빠의 작품 진면목을 오래도록 공유하고 싶다는 전시회 취지도 함께 밝혔다. 활발한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올케 언니가 남편에 드리는 사랑과 격려의 마음 씀씀이 선물이다. 갑자기 떠난 오빠를 그리워하며 애써서 준비한 언니의 배려에 눈물이 왈칵 솟구친다. 오빠의 유작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 표를 끊어놓고 있자니 2년 전 그 때, 오빠의 마지막 말이 자꾸 맴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있다던 오빠는 어느 날 내게 전화를 했다. "잘 지내냐" "응. 오빠, 얼마 있음 오빠 얼굴 볼 수 있겠네.." "그런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지금은 내부 공사 중이거든" "준비가 다 끝났다며? 근데 무슨 수리를 또 해야 돼?" "내 몸의 오장육부를 공사하고 있어, 간암 말기래. 가망이 없다지만…." 예술가는 죽어가는 비통한 사실을 이렇게 알렸다. 그리고 덧붙인 말은 "얘야, 너 어렸을 때 참으로 착했는데 미국 가더니 너무 독해졌더라. 내일 일은 모르는데 그저 마음 비우고 살아라. 오빠는 인생이란 내 작품처럼 늘 공사 중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지 뭐냐…. 그리고 울지 말아라" 놀이터로 알고 드나들었던 오빠의 넓은 작업실이 눈에 들어온다. 각종 금속 기구로 가득 찬 공간 안에서 오빠는 쇠를 갈고 자르고 용접으로 붙이느라 정작 내가 들어서도 알아채지를 못했다. 뭔가의 조각에 몰입돼 혼과 영이 하나가 된 모습에는 조용히 곁눈질 하고 있는 나마저 재료를 통해 재현한 대상에 대해 저절로 숙고하게 만들었던 기억이다. 그 때의 '사과, 퍼즐, 바이올린'을 조각하던 오빠의 현란한 손 놀림이 나비가 되어 훨훨 하늘을 난다. 비행기표를 앞에 놓으니 2년 전 오라버님의 마지막 말이 자꾸 맴돈다 "얘야, 내가 지금은 오장육부 수리 중이지만 어찌 보면 인생자체는 늘 공사 중이야. 소망이라면 인간에겐 영혼이란 게 있어서 인생은 미완성이 아니라는 얘기지. 동생아, 울지 마라"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11-01 비내리는 가을에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여름 내내 먼지가 한가득 쌓여 있든 지붕도 미처 거두지 못한 거미줄이 걸려있는 진회 색빛 벽도 왠지 초조한 내 마음도 다 축축해진다. 가을이 익어가면서 단풍도 익어가고 사랑도 그리움도 익어가고 덩달아 나도 익어가고 있다. 비가 오는 목요일 오후, 차를 타고 먼 길을 나섰다. 가을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급히 가방을 챙겨 떠나는 길이다. 북쪽으로 끝없이 올라가며, 언뜻 스쳐 지나가는 전혀 모르는 시골 동네의 고적한 골목길에서, 작고 낡은 오래된 대문 앞에 놓인 여러 주홍빛깔의 크기가 다른 호박들과 노란빛의 국화 화분들을 바라보며 그냥 가슴이 설레인다. 왜 가을은 이렇게 작은 것조차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며칠이 지나야 살던 곳으로 돌아갈 거라는 초조함이 더해져, 얼른 집으로 돌아가 나도 대문 앞을 온통 가을 색상으로 장식할 거라며 마음이 서둔다. 비가 내리며 더없이 깨끗하게 씻겨져 내린 나무들의 아름다움을 더 는 참을 수 없어 차를 세우고, 길 한 켠에서 올려다보는 가을의 단풍들은 마치 그림엽서 속 모습으로 나란히 긴 줄을 서 있다. 처음에는 약간 수줍은 듯 겁먹은 듯, 옅은 노란색으로 시작한 장난이 어느새 신이 난 듯 점점 더 짙게 칠해지면서, 드디어 주홍색에 빨간색까지 덧칠하며 온통 물감 놀이 중이다. 이 멋진 색상들을 미처 보지 못했다면 아마 난 정말 가을의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였을 거라는 생각에, 게으름으로 망설인 나를 억지로 끌고 함께 떠난 이들에게 감사해한다. 비록 집 떠난 고생의 첫날은 생각지 못한 추위에 떨었었고 어떤 저녁은 배를 굶으며 맥주 한잔으로 잠들었지만 그래도 뜻하지 않은 가을을 만났었고 설레였다. 이제는 돌아와 이 가을을 과거형으로 바꾸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떠나는 것은 아주 아쉽고 다시 돌아오는 것은 참으로 반갑다. 떠나지도 돌아오지도 않은 체, 언제나 변함없이 늘 곁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함께 가고 있는 - 무덤덤한 사랑의 표현조차도 제대로 못한 - 오랜 세월 지켜주는 벗들과, 이렇게 비가 오며 가슴 설레며 시린 가을과, 짙은 색깔의 화려한 단풍과, 여러 주홍빛깔의 호박들과 노란 국화들을 배경으로 마음속 사진을 찍으며, 또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으로 인생 사진첩에 가지런히 붙여 놓는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8-11-01 BUDDY에게 띄우는 편지
나는 이 친구를 열렬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나의 사정거리에 있어야만 안심이 된다. 가까이 마주하고 있으면 함께 있는 것에 무덤덤하고 간혹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달이 날만큼 무지하게 보고 싶어지는 그런 친구다. 그렇다고 특별히 잘 생긴 것도 아니요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어서 딱히 예뻐할 구석도 없는데 18년을 함께 살았다. 그런데 난 요즘 이 친구에게 약간의 권태감을 느끼고 있다 도대체 감정이란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싫든 좋든 한 집에 살면서 뭔가 상대의 존재가치를 인정해 줘야 하는데 이 친구는 나를 완전 무시한다.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고 밥을 차려 줘도 고마워하지 않으며 사랑한다고 쓰담 해줘도 미동도 없이 눈만 내리깔고 있다. 슬프다 못해 화가 나지만 나는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얼마 전 한달 간 여행을 다녀 올 일이 있었다. 그래서 부득불 그를 돌봐주는 기관에 맡겨야 했다. 이처럼 오랫동안 떨어지는 것이 처음이라 걱정이 되어 평소 내가 입고 있던 셔츠 한 장을 함께 싸서 보냈다. 여행 후 돌아와 보니 그는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 응급 치료를 받아야 만 했다. 의사의 진단으로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거식증까지 겹쳐서 위험하다고 말했다. 혹시 모를 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까 싶어 넣어 두었던 셔츠 한 장은 아예 흔적도 없이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으니 그 심정이 오죽 했으랴. 곁에 있어도 더욱 그립기만 했던 우리의 옛날을 돌아보며 시월의 마지막 밤에 네게 편지를 띄워본다. 친구야 너도 그 날을 기억하지?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은 5월5일이었어. 윤기 나는 까만 털에 콧잔등과 눈 가는 흰색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고 모유를 충분히 먹고 자랐다는 너는 아기 곰처럼 뒤뚱거렸지. 네 아빠는 유능한 사냥꾼이었고 네 엄마는 양치는 일을 멋지게 해냈다고 들었는데 넌 어쩐지 어리 버리 해보였어. 그래서 지어준 이름이 버리란다. 유년시절에도 너는 에너지가 지나치게 넘쳐서 늘 말썽을 피우며 쏘다니길 좋아했지. 세 번씩이나 담장 밑 땅을 파고 가출을 해서 애를 먹였지. 고민하던 나는 할 수없이 네게 중성화 수술을 해 줄 수 밖에 없었어. 그 일이 지금까지도 너무 미안하기만 해. 네가 해바라기처럼 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너의 주인으로 군림한 나는 너의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을 기뻐했어. 너의 기분과 상관없이 최대한 나를 즐겁게 해주길 바랬지. 그것도 사실은 많이 미안해. 버리야 이젠 내가 너의 기쁨이 될 거야. 나의 남은 사랑을 다 네게 줄께 . 권태감이란 힘이 빠져 아무런 감정표현을 못하는 있는 너에 대한 나의 투정이었어. 지금은 너의 눈이 흐리고 이도 다 빠졌으며 다리도 절고 뼈마디가 온통 쑤시지? 지금 이 대로의 네 모습을 나는 여전히 아끼고 사랑한단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 '버리 엄마' 로부터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10-02 복어요리 드세요
"이럴 땐 뭘 먹을까?" 한국 TV 의 케이블 방송에서 인기를 끌었던 개그 푸드 토크쇼의 화두다. 전국에서 배달된 사소한 고민들을 네 명의 MC가 풀어나가는 먹방 예능프로그램을 내가 유독 좋아한 이유는 간혹 세상 살 맛이 나지 않을지라도 잘 먹어야 한다는 데에 코드가 딱 맞아서다. 그래서인지 나는 속상한 일이 있거나 아플 때면 오히려 더 잘 해 먹는다. 그러니까 입맛이 없으면 밥맛으로 먹고 밥맛이 없으면 씹는 맛으로라도 먹는다는 얘기다. 비록 입 안에 넣은 음식이 모래알 같을지라도 꼭꼭 눌러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깨졌던 마음이 봉합이 되고 상한 기분이 다스려진다. 이렇듯 먹는 일이 사명이라면 음식을 만드는 일은 내게 있어 명상이라 할 수 있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 식 재료를 구입하고 다듬고 굽고 써는 과정에서 명상을 할 때 나온다는 세라토닌과 옥시토신 같은 사랑의 신경물질이 생성되어 세포 하나하나를 터치하고 있음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충만한 기쁨으로 내가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만든 음식은 상승된 엔도르핀을 전달하는 명약이 되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즐겨 보는 '밥 블레스 유'의 TV 프로의 관점은 나의 주파수와 동일하다. 연인과 이별했을 때, 갑작스러운 직장에서의 해고와 사람 관계에서의 오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돌연 사고 등 삶이 외롭고 지쳐 갈 때는 과연 무엇을 먹고 기력을 찾을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며 연구해 가는 이 요리 탐방의 주제가 참으로 흥미롭다. 이처럼 먹거리로 마음을 치료하는 것도 있지만 일본의 신토쿠 농장의 유래는 한 편의 동화처럼 아름다워 언제나 내 기억 속에 있다. 특별한 치즈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이 농장은 사회에서 소외 당한 무능력한 사람이나 장애인, 알코올 중독자나 비행청소년만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채소 가꾸기, 소 젓 짜기 쓰레기 청소 등의 자발적인 참여의식을 심어주어 사회와 인간관계 등에서 받은 상처를 백 프로 치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것처럼 한국의 한 농가에서도 '드림 뜰 힐링 팜' 이라는 농장을 만들어 누구든지 직접 농사를 체험케 하여 흙을 통한 자연원예치유를 하고 있다는 보람찬 얘기도 들었다. 짧은 인생, 그리 길지도 않은 세월을 걸어가는 우리의 여정에는 이런 일 저런 일로 상처투성이다. 문득 복어요리를 잘 하신다는 어떤 분의 조언이 떠올랐다. 복어는 독을 잘 제거하기만 하면 어떤 생선보다 맛있고 영양이 가득하단다. 상처란 그 사람을 묶어두는 족쇄며 인생의 흠이다. 그래서 그분은 마음을 상하게 하는 모든 일들은 자신을 성숙하게 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디딤돌이라 생각하여 매일 목숨 걸고 복요리 하듯 독을 잘 발라낸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나만의 복어 요리 팁은 무엇일까? 나는 그때 그때마다 맛있는 요리를 해서 잘 먹어준다. 눈물 콧물 흘리며 먹는 일에 충실하다 보면 어느새 억울하고 분한 감정들이 별것도 아닌 것처럼 스르르 녹아 내림을 알게 된다. 혹시 즐거운 일이 있으신지요? 제가 몸에 좋은 쌉쌀한 산채요리로 기쁨이 소멸되지 않게 해드릴게요. 마음이 슬프십니까? 이럴 땐 달달 한 쌀강정을 만들어 드리지요 아님 혹시 인생이 지루하신가요? 사이다처럼 톡 쏘는 새콤달콤한 해물 요리를 대령하여 마음이 환하게 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행여 거듭된 실패로 지금 눈 딱 감고 지구에서 뛰어 내리고 싶은 심정이신가요? 제게 비장하게 숨겨둔 히든 카드 요리가 있습니다. 복어요리 드시러 오세요. 반드시 파이팅 입니다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10-02 거꾸로 본 세상
머리를 아래쪽으로 둔 체 세상을 바라보니 전혀 다른 모습이다. 매일 곁에 있든 똑같은 것들이 새삼 낯설고 이상하다. 오랫동안 허리가 좋지 않아 조심하며 살고 있지만, 가끔 심한 통증이 오면 평소의 사소한 일들이 아주 큰 일이 된다. 그런 때에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부터 시작하여 세수하고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는 작은 일상의 일들이 대단한 것들로 변신한다. 늘 하든 그대로 하면서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자랑할만한 일이었든 것이다. 우연히, 허리를 붙들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모습을 본 누군가가 거꾸로 서 있는 운동을 하면 좋다기에, 매일 아침저녁, 기구를 이용하여 머리를 땅 쪽으로 내리는 운동을 시작하였다. 처음엔 무서움과 어지럼증에 눈을 감고 있었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저절로 눈을 뜨고 뒤집힌 세상을 본다. 언제나 벽에 걸려 있던 그림들과 커다란 거실의 문짝과 거미줄이 보이는 높은 천장을 한 번도 눈여겨 본 적이 없었는데 새롭다. 그렇지, 세상은 이렇게도 볼 수 있는 것인데 난 앞으로 바라본 세상만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왔던 것이다. 갇혀있는 고정관념과 선입감 때문에 오히려 세상을 한쪽으로만 보면서. 알고 있으며, 배웠으며, 경험한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열려있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하는데, 나는 습관처럼 누군가를 처음으로 만나면 제일 먼저 그 사람의 옷차림과 얼굴 모습과 말투등으로 짐작하고, 물건 하나를 선택할 때에도 그것의 가치보다 성급하게 상표를 보고 결정한다. 세상 속의 사람이나 사물이나 모든 것은 다 변해가는데 여전히 난 고정관념에 묶여 멈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어느덧 몇 달 동안 얼굴을 땅 쪽으로 놓고 있는 운동 덕분인지 허리는 조금씩 나아져 가고, 난 더 자연스럽게 뒤집혀 있는 사물들을 본다. 그러면서 조금씩 내 인식 안에 굳어져 선입감으로 마주치든 일상 속의 모든 것들을, 새로운 각도로 다르게 볼 여유도 생겨간다. 변하지 않으면 고인 채로 썩어간단다. 세상의 흐름에 굳이 함께 따라갈 이유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변하고 있고 어떤 새로운 인식들이 달라져 가고 있는지, 열린 마음과 눈으로 바라보며 사는 훈련과 연습도 필요한 거였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8-09-02 잠 못드는 밤에
잠이 오질 않는다. 할수없이 일어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보니, 커다란 나무들에 가려졌지만 반쪽짜리의 달과 총총한 별들이 반짝인다. 오랜만에 올려다 보는 밤하늘이다. 집 기둥 모퉁이에 걸어놓은 노란색 풍경은 작은 바람에도 얇은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고, 어디선가 먼 고양이의 울음 소리도 들린다. 뒷집 수영장 물 소리도 들리는게 아마 작은 짐승들이 그 속에서 놀고 있나 보다. 평화로운 한밤중의 풍경이다. 다만 혼자 여러생각에 넘쳐 잠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밖으로 나와 있으니 머리도 마음도 맑고 시원하다. 언제나 매달 중순이면,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 고객들에게 보낼 청구서를 만들어 보내 그 한 달을 마무리한다. 일을 계속하는 보람도 있지만 가끔은 힘들고 어려운 오늘처럼, 유난히 뭔지 모르게 잘 풀리지 않는 날도 있다.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고 있으면서, 갖가지 생각들은 엉뚱한 예전 고등학교때 친구들이랑 몰래 갔었던 해수욕장 근처의 결핵 요양병원 골목에서 헤매이고, 눈은 숫자의 더하기와 빼기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실수투성이로 엉망진창인 것이다. 넘치는 많은 생각들을 멈출 수 없어 차라리 하던 일들을 멈추고 집으로 일찍 돌아와 버렸다. 그냥 그 생각의 끝을 따라 어디까지인지 가볼까 하다, 이럴 때는 다 놓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복잡하고 어지러운 많은 생각들을 다 던져놓고 잠시 다른 것들을 바라보다 보면, 세상 어려운 일들도 어쩌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편안해지며 어쩌면 새로운 평화스러운 밤을 보내게 된다. 밤하늘, 나무, 달, 별, 풍경 소리, 고양이 소리, 물소리,,,,,, 무언가 잘 풀리지 않거나 매일 하고있는 일상들이 실타래처럼 엉켜 복잡할 땐,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이라도 고개 들어 하늘도 보며 크게 숨도 쉬어 보면서 쉬었다가 가보자. 그렇다고 크게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을 거니까. 조금 늦고 서툴러도 괜찮을 거다. 분명 내일 아침 일어나면, 꼭 해야만 하는 많은 청구서의 숫자가 잘 맞아 마감 날짜도 어기지 않게 될 것이며, 청구서 위의 많은 이름도 전혀 틀리지 않을 것이며, 하나씩 제대로 봉투에 잘 넣고 각각의 우표를 붙인 체 날아가, 새로운 다음 달의 나의 일을 만들어 주며, 그것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늘 그랬듯이. 또 가끔은 많은 생각들 때문에 미처 잠들지 못한 체 서성이다, 문득 밤하늘의 달과 별도 보며 또 한편으로 안도할 것이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8-09-02 파라다이스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나는 창가에 기대어 선다. 손 끝에 전해지는 머그잔의 따뜻함에 기분이 좋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싱그러운 시간, 작은 뜰 안으로 빛을 따라 들어온 달팽이가 풀잎 끝에 달려 있는 이슬을 마시고 있다. 어디선가 갑자기 사마귀 닮은 곤충 한 마리가 튀어 오르자 경쾌하게 아침 체조를 하던 무당벌레는 놀라서 그만 뒤로 나동그라진다. 이 아침에 나는 살아 숨쉬고 있는 작은 생명체들을 들여다보며 그 신비로움에 마음이 들떠 있다. 지금은 뜰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버려진 맷돌을 찾아오는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평소 맷돌은 작은 분수대였는데 날이 뜨거워 물이 증발해 버리자 어느 날부터인가 파충류가 방문하기 시작했다. 이곳 캘리포니아는 지천에 깔린 게 도마뱀이라 발에 채여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큰 성이라 여겨졌을 분수대 안에서 한 쌍의 연인들은 매일 꿈결 같은 허니문을 즐기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멋진 맷돌 궁궐에서 앙증맞은 공주와 왕자를 만들어 냈다. 네 마리의 가족들은 어찌나 맷돌성을 좋아하는지 여름 내내 부지런히 인 엔 아웃을 한다. 문득 내가 작은 뜰 안에 숨어 있는 요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공상이 나는 매우 즐겁다. 내가 가끔 준비 없이 집을 훌쩍 떠나 다녀오는 곳이 있다. 스캇벨리에 있는 레드우드 숲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산새들의 지저귐과 삼단 폭포에서 떨어지는 맑은 물소리가 제일 먼저 나를 반긴다. 넓디 넓은 산등성이 곳곳에 가득히 피어있는 수국과 민들레, 맨드라미와 들꽃들의 향연은 그리운 고향집 엄마품에 안긴 것처럼 포근하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빽빽한 레드우드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신선함을 깊이 들이 마시는 순간 이곳까지 버겁게 싸 짊어지고 온 등 짝의 근심 덩어리 보따리가 솜털처럼 가벼워짐을 느끼게 된다. 살면서 그렇게나 힘들었던 내려놓음의 문제들이 일순간 안개가 걷히듯 사라지자 텁텁한 생각들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이다. 때때로 내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나를 죽이기 위해서다. 여전히 팔팔하게 활개치고 있는 못된 성깔들을 죽이지 않고는 결코 만족함이 없어서다. 현재 주어진 환경과 형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는 커녕 더 못가져 안달하는 것이 문제다. 어느덧 자연이 주는 기쁨과 기운으로 새로운 힘이 생기면 거룩할 정도로 내가 착해진다. 그러니까 내 눈 안으로 들어온 세상은 예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보고 듣고 만지고 느껴지는 것 모두가 파라다이스다. 숙제처럼 남아있는 껄끄러운 사람과의 관계고리에서도 용서 못할 일이 전혀 없으니 잠시동안 머물다 가야 할 나그네 인생길에서 오직 사랑만을 퍼 주고 싶은 열정으로 삶에 포커스를 맞추게 된다. 어느새 커피 잔이 다 비워졌다. 나는 다시 향기로운 커피를 내리면서 나의 집 작은 뜰 안에서 단지 하루의 일용할 양식에 기뻐하는 귀여운 생명체들을 감상하며 낙원에 빠져든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다.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08-07 바다와 아버지의 추억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한국의 남쪽 끝 작은 바다가 있는 곳이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 사시다 전쟁을 피해 내려온 아버지는 낚시하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낚시하러 가는 아버지를 따라 짧디짧은 단발머리 팔랑거리며 두 손 꼭 잡은 채 따라나서면, 이 세상 부러울 것도 원하는 것도 없이 행복했었다. 엄마 없이 아버지랑 단둘이서만 있는 것도 좋았었고, 향긋한 파이프 담배 물고서 바다만 바라보며 아무런 말 없이 앉아 있는 아버지의 냄새를 바람결에 마음껏 맡을 수 있는 것도 참 좋았었다. 늘 따라나섰던 그 바다는, 어릴 적의 내 마음처럼 편안하며 거의 파도가 없는 잔잔한 호수 같은 곳이다. 통금이 있던 시절이라, 생선을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어떤 여름날, 그 비린내 나는 선창가 구석에서 신문지 몇 장을 겨우 덮고 잠들었다가, 잠이 덜 깬 체 새벽 아침 햇살에 한가득 잡혀있는 파란 빛깔의 생선들을 보며 무서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푸르디푸른 생선 비늘이 햇빛에 반사되어 내 눈을 찌르는 그때의 모습은, 가끔 꿈속에서도 나타나며 그 눈부신 푸른 빛으로 선명하다. 그 바다는 이제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 내 삶 속에 남겨져, 늘 반짝이며, 늘 눈부시며, 늘 평화로운 이름으로 새겨져 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하나의 은신처로 만들어 있어, 언제나 자유로이 숨기도 하며 울기도 하며 위로받으며 살아간다. 가끔 산다는 것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누군가의 진정한 위로가 필요한 때면 난 무엇보다 바다가 먼저 보고 싶다. 정말 그곳에 가기만 하면, 늘 언제나 내 편이셨든 아버지가 계시면서 내 손 잡고 웃어주시며 "괜찮다, 괜찮다" 해주실 것만 같으다. 어른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와지니, 그저 나 하나 있는 그대로 봐주는 영원한 나의 편이 그립다. 그 옛날처럼 제대로 - 어리광 한번 크게, 투정 한번 크게 - 콧등에 잔뜩 주름 잡아가며 부려보고도 싶다. 아주 먼 곳으로 이사를 오고 또 더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그 고향보다, 이제는 가깝지만 더없이 넓디넓은 태평양 바다를 찾아간다. 짙은 회색 바다의 색깔과 끝없이 밀려오는 거센 파도와 그 기다란 띠를 두른 하얀색의 거품들은 내 마음속의 어릴 적 고향의 바다가 아니다. 그렇지만 어릴 때와 다 자란 지금의 나처럼, 바다도 또 그렇게 뚜렷이 전혀 다른 두 가지의 모습으로 나누어져 기다리고 있다. 내가 여전히 똑같은 나인 거처럼, 바다도 그렇게 영원히 바다일 거라 생각하며 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들을 찾아간다. 이젠, 아버지보다 어느듯 더 나이가 들어 버렸지만, 무엇보다 그 잔잔하고 평화로운 바다를 내 마음속에 만들어 주고 가신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초여름 오후의 나른함에 기지개 펴본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8-08-07 바람 바람 바람
"야 야 야,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야 야 야…" 매일 90도가 넘는 폭염으로 누구라도 마음과 몸이 지쳐 가고 있는 이 때에 남과 달리 나는 노래 가사처럼 마음도 하나요 느낌도 하나인 일에 흠뻑 빠져 회춘한 나날이다. "사랑에 무슨 나이가 있나요 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 눈물이 나네요 야 야 야.." 참으로 묘한 매력으로 와 닿는 노래가락을 흥얼거리며 도착한 곳은 준바 댄스교실, 문밖으로까지 흘러 나오는 빠른 템포의 음악이 벌써부터 내 몸을 들뜨게 한다. 학생 수는 19명, 전체가 아줌마들인데 엄마 손을 잡고 따라온 6살 아이의 춤 솜씨는 절로 'Bravo'가 외쳐진다. 동양 사람은 오직 나 하나, 비록 내 나이가 가장 많지만 전혀 기죽지 않는다. 몸에 착 붙는 래깅스 대신 언제나 꽃무늬 캉캉 치마를 입고 수업에 임하는 나의 삼바 댄스실력은 국적을 브라질로 오해할 만큼 클래스 안에서 인기 짱 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나 보다. 한 시간 동안 멈춤이 없이 칼로리와 지방 연소를 위해 미친 듯이 전신을 흔들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몸의 균형과 심폐 지구력이 강화되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고 어떤 일에든 자신감이 넘치게 된다. 평소 부끄럼이 많고 몸치였던 내가 큰 용기를 내어 생소한 스포츠로 타인종과 친근하게 어울려 즐거움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이 노래 덕분인 것 같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준바 스포츠 댄스로 온 몸이 땀에 절어지면 바로 수영장으로 달려간다. 수영은 전혀 못하지만 WATER AEROBICS 을 하는 것이다. 이것 또한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스포츠다. 물 속에서는 아무리 난리를 쳐도 다칠 염려가 없다. 야외라서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클래스 인원은 30여명, 풍채 좋은 남녀 어르신들인데 이곳에서도 한국 사람은 오직 나 뿐이다. 준바 댄스에 비하면 쉬울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물 속에서 앞으로 달리거나 뒤로 걷는 것 그리고 운동기구를 가지고 동작을 따라 하는 것은 마디마디 관절운동이라서 에너지가 총동원 된다. 때때로 나는 강사의 눈을 피해 내 임의대로 칸추리 리듬에 맞춰 물 속에서 우리 고유의 태권도와 강강수월래의 춤을 추는 것에 쏠쏠한 재미를 느끼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 모두가 뒤집어지는 일이 있었다. 팝송이 아닌 싸이의 '강남 스타일' 노래를 에어로빅 음악으로 틀어준 것이다. 전부다가 미국인인 학생들은 이 음악에 신바람이 났다. 선생님의 랩에 따라 물 안에서 말춤을 추며 입을 모아 "오빤 강남스타일"을 부르니 수영장 물이 바다가 된 듯 파도가 넘실거린다. 멈출 수 없는 후렴구의 마력에 끌려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오 오 오 오…오빤 강남스타일"을 힘차게 합창하는 은발의 인어들은 황금빛의 석양과 대비를 이루어 싱싱한 청춘이다. 아, 세월을 비껴간 나는 어떡하지? Eh, Eh, 섹시 레이디가 돼 버린 내 마음에도 심장이 뜨거워지는 바람, 바람이 분다.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07-04 레드우드 숲에서
늘 한결같은 삶을 사는 것은 진정 축복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체, 있는 그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애쓰고 수고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잦은 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내 자리를 지키며 꿋꿋이 자라고 있는 나무들처럼, 자신의 몫을 다하면서 세상의 숲을 만들고 어우러지면서 그렇게 같이 가는 것이다.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레드우드 숲이 있다. 우연히 따라나선 길에서 만난 이 수많은 나무들은 얼마나 키가 크고 높은지 거의 하늘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울퉁불퉁 거치른 나무의 덮개인 겉껍질은 붉은 황토색으로 두껍고 단단하게 적당히 말라 있다. 너무 긴 키 때문인지 괜스레 애처롭다. 그 나무들은 가까이에서 두런거린 채 마주하며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듯 다정한 모습으로 옹기종기 모여, 넓고 빨간색의 커다란 숲을 이룬체 살아간다. 나무와 나무들의 공간이 좁아 단숨에 그 숲을 건너가는 것은 힘들다. 바람이 불어오면 그 기다란 나무들이 함께 작은 미동으로 리듬을 맞추면서 윗가지들이 흔들린다. 쏴 하는 바람으로 흔들리는 나무의 향기가 코에 닿으며 순간으로 보여지는 조각 하늘빛이 유난히 푸르르다. 그 하늘을 보기 위해 고개를 젖힌 나도 덩달아 그 바람을 느끼며 작게 흔들린다. 그 순간 나도 나무이고 싶다. 이들은 날 때부터 뿌리가 깊지 못한체 키만 멀뚱히 자라는 운명으로, 작은 바람에도 곧잘 쓰러지곤 해서, 곳곳에 넘어져 누운 채로 기다란 몸통의 배를 내놓고 있는 나무들도 있다. 숙명적으로 뿌리가 깊지 않음을 알기에, 수분과 영양분도 아껴가며, 서로 서로가 가까이에서 기대고 살아야만, 오래오래 기다란 몸을 키우면서 자신이 지켜내며 끝내야 하는 몫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이다. 함께 나누며 의지하며 살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본능을 터득한 나무들만이 살아남아서, 긴 세월 동안 커다란 숲을 이루면서 오늘도 나 - 레드우드를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너가 없으면 나도 없다는 삶의 이치를 깨달은 나무들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도 늘 알게 모르게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고 있다. 백 년을 천년을 살 거처럼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고 또 사랑도 주고받으며, 스스로 수분과 영양분을 만들어 가면서 살아간다. 늘 곁에 있으리라는 당연함으로, 피차의 사과와 용서도 없이 지내다, 어느날 문득 바람에 쓰러진 빈자리의 누군가를 보게 되면 후회한다. 조금만이라도 더 많이 사랑해줄 걸 하며, 제발 이 후회를 잊지 않고서 기억하며 살아야지 하면서도 다시 그 당연함으로 외면한다. 비록 더없이 연약하며 또 세찬 바람에 잘 흔들리며 넘어지는 얕은 뿌리를 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함께 기대며 서로를 보듬고 사랑하며, 끝없는 새로운 탄생과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다시 세대를 넘겨 가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8-07-04 오늘의 포커스
얼마 전 존경하는 지인 부부와 점심 약속이 있었다. 그런데 1시간 30여분이 지나서야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도착하신 분들은 트래픽 시간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정체된 도로사정을 설명하기에 애썼고 나는 기다림의 인내를 웃음으로 답하느라 입가가 피곤했다. 비록 때늦은 점심을 먹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참으로 유익한 대화를 나누며 보람있는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와 일상을 정리하고 TV 앞에 앉았다. 늘 그렇듯이 오늘의 지역 로컬뉴스부터 틀었다. 680 프리웨이에서 있었던 교통사고 소식이 눈에 들어온다. 순탄하게 프리웨이를 잘 달리고 있던 자동차 행렬 안으로 갑자기 도로변에 서있던 거대한 나무가 자동차를 덮치면서 쓰러졌다고 한다. 그일로 J병원에 근무하는 오십대 후반의 여의사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고소식이다. 등골이 오싹한다. 그 지역의 같은 시간대 도로에서는 오늘의 만남을 위해 나에게 달려 오고 있던 지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후 사고의 경위를 설명하는 리포터는 멀쩡하게 보여진 나무는 실상 가뭄으로 바싹 말라 있다가 견디지 못하고 넘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까지 아득해진 나는 잠시 TV를 끌수 밖에 없었다. 뜻밖에 생명을 잃은 사람은 아마도 스케줄에 따라 출근길이었을 테고 집을 나서면서 가족들과는 저녁에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경쾌하게 나누었을 것이다. 그리고 커피한잔을 들고 자동차에 시동을 걸어 출발하면서 계획된 하루의 바쁜 일과를 머릿속에 그렸겠지. 어쩌면 그녀는 좀 더 편안한 운전을 위하여 자동차 오디오에 씨디를 넣고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했을지도 모른다. 몇 분 후 끔찍하게도 나무에 맞아서 목숨을 잃을 일은 자기 인생에 있어서 전혀 상상조차 못했을 테니까. 이후에도 나는 종종 생면부지인 그녀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라서 마음이 슬펐다. 오늘도 나는 분주했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TV앞에 앉는다. 채널 7 ABC뉴스에 초점을 맞춘다. 브레이크 뉴스가 화면에 뜬다. 나흘 전에 발생한 LAKE COUNTRY에 큰 화재가 아직까지 전혀 진압이 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예 OUT OF CONTROL 이란다. 지난 해에 소노마 카운티에 있었던 대형화재는 또 얼마나 끔찍했던가. 마음이 아파서 다른 채널로 돌린다. 지난 5월 하와이섬 킬라우레아 화산이 폭발하여 여전히 용암이 분출되고 있으며 유독 가스가 난무하고 있다는 뉴스다. 이 현상은 앞으로도 몇 달이 더 지속될 것이라고 전한다. 또 6월 초에 발생했던 과테말라의 푸에고 화산의 폭발로 인한 이재민의 실태도 함께 비추어 준다.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그들의 모습 속에 미래를 알 수 없는 내 모습이 투영되어 다가온다. 정말 싫다. 절대 나는 아닐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몸서리를 친다. 그러나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하는 불의 고리가 아니더라도 지구 곳곳에서는 산이 터지고 땅이 꺼지고 쓰나미가 덮어 버리고 바람과 불이 쓸어 버리는 속수무책의 자연재해가 나날이 빈번해지고 있음을 본다. 이러다가는 일본의 후지산과 한반도의 백두산, 이곳 미국의 엘로스톤이 한꺼번에 터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심히 걱정이 된다. 누구라도 하늘 높이 피신할 수도 없고 땅속 깊이 숨을 수도 없다. 나는 이 시점에서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하는지 심각해진다. 오랜 고심 끝에 그냥 오늘 하루를 잘 살기로 했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그렇게 잘 살다 보면 언젠가 닥칠지 모르는 그 날에 후회 같은 것은 덜할듯 싶다. 그래서 오늘도 어렵지만 관용과 배려와 사랑을 내 마음에 철칙으로 삼고 부지런히 감사거리를 찾는다. 단 1분 후의 일을 알 수 없는 인생을 오늘도 살아 숨쉬게 하는 하늘의 은혜에 초점을 맞추니 환경에 상관없이 지금의 내 자리가 에덴동산이 된다.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06-06 자연인 신드롬
나는 농작물을 제법 잘 기른다. 어떤 종류의 씨앗이던지 내 손을 통해 땅에 심기만 하면 때에 맞춰 만족하리만큼 수확을 하게 된다. 농작물뿐만이 아니라 나무나 꽃, 선인장 까지도 아주 잘 키워낸다. 남들이 노력하다 결국 포기해버린 화초들도 내 손을 타면 방긋 웃으며 되살아난다. 이런 신통한 재주를 우 쭈쭈 치켜 세워주는 이웃들의 박수에 밭에서 보내는 나의 시간들은 황홀하기만 하다. 평소 우리 집엔 문지방이 닳도록 사람이 들락거린다. 예고도 없이 손님이 들이닥칠 때라도 나는 전혀 당황해 하지 않는다. 먹거리가 가득한 텃밭으로 쪼르르 달려나가면 만사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자라 있는 부추랑 깻잎, 쪽파를 솎아 내어 먹음직스럽게 파전을 부치면 되고 물 오른 돌나물은 새콤달콤한 고추장과 매실 엑기스 한 방울로 그 향기로움을 살려낸다. 알맞게 퍼진 아욱 잎은 마른 새우를 넣어 구수하게 된장국을 끓이고 오이와 방울토마토, 쑥갓은 밭에서 뜯어온 그대로 식탁에 올려야 상큼함이 더 실감난다. 나물로는 연한 근대와 시금치를 데쳐서 마늘 없이 간장에 조물조물 감칠맛 나게 무치고 통 보리밥에 열무김치를 곁들여 내면 뚝딱 건강한 시골 밥상이 차려진다. 어느 결에 그릇이 다 비워지면 나는 담장을 타고 올라와 있는 농익은 멜론을 따서 디저트로 내 놓는다. 단 물이 뚝뚝 떨어지는 멜론 한 조각을 입에 넣는 순간 아! 그냥 한마디로 살 맛이 난다. 이렇게 이른 봄부터 여름, 늦가을의 해가 기울어 호박씨와 여주씨, 들깨 씨 등을 추수하게 될 때까지 나는 첩첩 산중의 자연인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달포전 직장을 그만 둔 김에 나는 실지로 이주할 귀농에 집착했다. 뉴스에서 들어본 '아미시 타운'을 그리며 남은 인생을 그들처럼 문명사회를 벗어나 초원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보고 싶은 유혹에 빠졌다. 하지만 엄격한 규율에 따라 18세기로 돌아가 고립된 생활을 한다는 것엔 영 자신이 없다.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웰 컴 투 마이 힐링 홈" 을 외치며 내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는 꼭 밥을 지어 먹여 보내고 싶은 예의와 기쁨을 어찌 내려 놓을 수 있단 말인지. 게다가 고립된 그곳은 재래식 화장실에 마차를 타고 다녀야 한다니 차라리 꿈인 것이 다행이다. 평소 자연인 신드롬 가슴앓이를 하고 있던 나는 어쩌면 매일 손바닥만한 텃밭에 앉아 자연인의 모습을 연습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인종 전시장이라 할만한 이 복잡하고 혼탁한 미국 땅에서 현실의 고달픔을 내던지고 가능한 한 멀리 도피하려던 나의 속내를 존경하는 지인은 단 한마디의 말씀으로 깨우쳐 주셨다. "세상에 머물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삶의 형태로 살아라."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진정한 자연인은 도망치듯 깊은 산사에 칩거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 없는 세상가운데서 지지 볶고 살지라도 바른 가치관으로 지조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호미를 들고 다시 텃밭에 나가 앉은 나는 잡풀을 뽑아내고 불필요한 돌을 골라내며 좋은 땅을 일구기에 땀을 흘린다. 문득 내 마음의 밭은 정작 형태인지를 곰곰 생각하게 된다. 바뀐 관점으로 이해한 오염된 세상은 매우 흥미롭다. 다양한 캐릭터의 사람들이 섞여 사는 시끌시끌한 이 도시 한가운데가 내가 뿌리 내릴 터전임에 감사하다. 바라기는 심은 대로 거두는 농작물의 법칙처럼 공의와 정의, 사랑을 뿌리내려 반딧불의 삶이 되기를 결단해본다.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06-05 인생 사용 설명서 김홍신
제목이 참 좋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든 "사용 설명서"이다. 결코 전혀, 작지도 않은 나이인데도 여전히 배우고 느끼고 또 감동 받는다. 그 책 한 권을 들고서 다시금 나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그 자체가 고맙다. 물론 작가가 말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늘 우리가 주변 어디에선가 들었었고 또 읽었던 평범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고 또 어떻게 살아갈 거라는 우리 각자의 마음속 나름 품고 있었던 생각들을, 쉽게 풀어서 설명서로 만들어 놓았다. 나를 사랑하라고 오직 그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라고, 감사의 마음을 품고 세상의 일들을 받아들이라고 누누이 이야기해준다. 그렇지만 삶은 커다란 일보다 작고 사소한 일들에 더 많이 상처받고 속상해하며 마음속 안에 상처와 흉터를 남겨 놓는다. 내게도 오래전 절대로 아물지 않을 거라는 상처와 흉터가 있었다. 전혀 대항할 마음이 없었기에 작은 방패조차도 들지 않은 채로, 무수한 화살을 제대로 오랫동안 받은 채 쓰러져 한동안 많이 아팠었다.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었고 건강도 좋지 않아 매일매일을 간신히 버텨가며 사춘기의 아들 하나 껴안고서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상황에,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자신의 편안함과 부유함과 건강함을 마음껏 뽐내며 자랑했었다. 말 한마디에 몸짓 하나에 눈빛 하나로 그토록 인간이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시간은 많이 흘러갔고 나도 많이 변했고 물론 상황도 많이 달라졌다. 그 가슴 속에 박혀있었던 화살들은 세월 때문인지 아니면 나 자신이 성숙해지면서 치유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 흉터조차도 남아 있지 않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돌보지 않으면, 세상 누구에게도 그렇게 대접을 받을 거라고 받아들이면서, 이해하며 용서했다. 내가 변해야 세상도 변하고 내가 행복해야 세상살이도 행복해진다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진리도 배웠다. 그 어떤 공부와 훈련과 연습보다 더 값지게 내 인생의 사용 설명서를 터득한 것이다. 지금도 때때로 비가 오는 날이면 슬슬 흉터 자리가 가렵다. 날씨 탓인지 괜스레 그 가려운 자리를 다시 열어서 보게 된다. 그러나 더이상의 상처가 아닌 교훈으로 그 자리를 바라보게 된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8-05-02 반 고흐의 노란색
노란색, 그 색깔은 불타는 태양과 한여름의 해바라기와 고흐를 떠올리게 한다. 그 이름은 또한 아픔으로 전해진다. 그 색깔은 이 세상의 어떤 색과 함께 있더라도 유난히 눈에 띄고 더없이 화려한 듯하지만, 왠지 모르는 서글픔은 아마 고흐의 슬픔으로 기억된 채 굳어져 버린 생각 때문이리라. 고흐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37년을 살다간 그는 생전에 단 1점의 유화 작품을 팔았었고, 제대로의 그림 공부를 받아보지 못한 채 어떠한 기교와 선입감과 어떻게 해야만 한다는 시류의 통제 없이, 끊임없는 습작과 늘 새로운 시도와 훈련으로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갔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상을 변형하고 재구성하고 전환해서 그리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깜깜한 자신 속에서 길을 찾으려 애쓰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방향을 잃고 헤맬 때도 있었기에, 그는 고뇌하며 또 의문을 품으며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으로 버텨갔을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더 세상과는 동떨어진 체,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 많은 정신적인 고통과 커다란 병을 얻었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난 그림을 그리려 캔버스 앞에 앉으면, 순간 텅 빈 공간이 두렵다. 무엇을 그리며 어떻게 무슨 색상으로 시작해야 하며 왜 꼭 이렇게 이 하얀 사각의 물체 앞에서 뭔가를 그려야만 할까 하는, 그런 두려움이다. 그렇듯 서로의 기를 보여주는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대립이 아닌 하나로 동화되어 작은 형체가 보여지고 갑자기 색상들은 서로에게 조화되어 편안해지면서, 어느덧 나름의 작품으로 변해간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곳에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만족감은, 내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이유가 되어주고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사후에 누리게 될 그토록 화려한 명성과 작품에 대한 찬사를 생전에는 전혀 가져보지 못한 채로, 세상에서의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하고 떠난 반 고흐의 아픈 삶과 예술은 여전히 노란색으로 내게 보여지고 있다. 나는 세상의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신을 위한 진정한 예술의 묘미를 열렬히 음미하고 싶어 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을 찬양한다. 나 역시 늘 그 언저리에서 맴돌다 되돌아오고 다시 시작할 거지만, 오늘은 고흐의 노란 해바라기를 그려보고 싶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2018-04-04 톰과 제리의 여행
직장에 사표를 냈다. 아주 쿨 하게 미련 같은 것은 남겨 두지 않기로 했다. 근 6년간 충실했던 직장을 그만두기까지는 갈등의 연속이었지만 실력을 쌓고자 노력했던 내 분야 쪽의 일은 이만큼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눈물을 뿌려가며 배운 그간의 생생한 의료 체험을 글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일부러 사서 한 고생일지 모르나 나름대로 성취와 보람이 강렬한 직업을 고른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판단된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해 몰두한 시간들은 참으로 행복하기만 하다.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회사에 작별을 하면 나는 다음 날 곧바로 여행길에 오른다. 단 하루도 지체할 수 없는 것은 심지 약한 내가 혹시 변덕을 부려 그대로 주저앉게 될까 봐 빡빡하게 스케줄을 짜 두었다. 장장 40여 일을 계획한 나 홀로의 여행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흥미로운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잔뜩 부푼 마음으로 여행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곁에서 지켜보던 딸 아이가 일침을 놓는다. "엄마 혼자 가는 여행은 절대 허락 못해. 어디든지 꼭 나랑 함께 가야돼, 알죠?" "무슨 그런 억지가 있냐, 이번엔 기필코 나 혼자 가고야 말겠어." 그러나 딸과의 신경전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음을 나는 예감한다. 어쩌자고 딸 아이는 청년의 시기인 지금까지도 껌 딱지처럼 찰싹 내 옆에 붙어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제 또래 친구들은 기회만 되면 어떻게든 부모의 집을 떠나려고 한다는데 내 딸 아이는 유독 집 밖으로 나가 독립하는 것을 절대 반대 또 반대하고 있다. 아이의 말로는 궁궐이든 초가든, 스테이크를 썰든 보리죽을 먹든지 간에 오직 엄마가 있는 공간은 행복이라고 달콤한 이유를 쏟아 놓는다. 하지만 나도 가끔은 엄마의 자리를 내려 놓고 홀가분해지고 싶을 때가 많다. 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딸 애의 관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거다. 공교롭게도 우린 혈액형도 같고 식성과 분위기, 좋아하는 스타일도 꼭 닮았다. 게다가 정의로운 일엔 몸 사리지 않고 불 같은 성깔을 드러내는 것 조차 같다. 이런 딸과 줄곧 한 지붕 밑에서 살고 있으니 충돌이 잦은 수 밖에. 그런데 금 쪽 같은 이번 여행에도 딸 아이는 나를 참견하고자 발 벗고 나섰다. 도대체 누가 엄마이고 누가 자식인지 모를 일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건 하나를 털어 놓겠다. 꽤 오래 전에 우린 라스베가스로 여행을 갔었다. 엄마와 딸의 그림이 그렇듯 우린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는 하하 호호 거리며 아주 행복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딸과 나는 대판 싸우고 말았다. 예약해 둔 멋진 워터 쇼를 재미있게 구경하고 난 뒤 나는 호텔 내부의 아름다움에 취해 딸을 놓쳐버렸고 또 딸은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 밤새 헤 메고 다녀야 했던 것이다. 사건 이후 집에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잠도 따로 자고 밥도 따로 먹고 구경도 각자 하면서 입술을 악물며 남아있는 3박 4일을 참담하게 보냈다. 평소 오늘의 해가 지나도록 분을 품지 말아야 한다고 일러주던 나의 가르침은 스스로 밴댕이 소갈딱지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게 된 셈이다. 일생 부끄럽기 짝이 없는 슬픈 기억이 되고 말았다. 지나친 관심이 간섭으로 느껴져 버거워하는 나와 늘 우물 곁에 놓아 둔 아이처럼 불안해 보이는 엄마를 보호하려는 딸과의 팽팽한 줄 다리기는 어쩌면 영원히 지속될 것 같다. 그렇다면 번번히 참패를 당해 땅을 치는 한이 있더라고 똑 소리 나는 딸과의 여행을 시작해볼까 한다. 그러나 길을 떠나기 전 여행가방을 꾸리면서도 우린 에니메이션의 톰과 제리처럼 서로 아웅 다웅 하고 있다.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04-04 행복
무심코 책 한 권을 꺼냈는데 그 안에서 신문지 한 조각이 후두둑 떨어진다. 뭘까 하는 마음에 새삼 접힌 주름을 펴고서 천천히 읽어본다. "베풀면 행복해진다"는 칼럼이다. 사랑하는 분이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의 행복을 혹시라도 덜 감사하면서 살아갈까 하는 염려의 마음으로, 일부러 만나는 날짜를 기다리며 건네주신 것이다. 몇 달이 지나갔지만 잊고 있었던 감동이 다시 가슴을 흔든다. 신문 속 칼럼의 연구 결과는, 가벼운 물질의 작은 베풂도 뇌를 자극하여 그 순간부터 움직임이 매우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남을 위해 베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다르며 - 걱정, 근심, 우울감 대신 환한 행복감으로 차 있으며 - 베푸는 사람들은 결국 주변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단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은,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행복이라는 것이다. 베푼다는 것은 지독한 중독이며 그 이유는 스스로가 행복해지기 때문이리라. 오늘도 아니 남아있는 나날들도 사실은 모두가 행복해지려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늘 조금이라도 더 가지고 싶은 욕심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베푸는 마음보다 가진 것을 지키려는 마음이 훨씬 더 크다.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만족해하면, 곁도 보여지고 뒤도 돌아봐 지면서, 바로 그것이 행복을 가지는 가장 쉬운 지름길일 것인데도,,, 어떤 날은 유독 어깨 내리고 힘들어하면서 나보다 더 가진, 남의 행복만을 바라보며 부러워하곤 한다. 그렇게 오랜 반복의 날들을 습관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늦지 않게, 가슴이 떨리며 살아있다는 행복을 다시 느끼고 싶다. 베풀면서 행복해지련다. 비록 많이 모자라더라도, 작은 물질도 베풀고 따뜻하고 진실한 마음도 보여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도 전하면서 다른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나도 같이 더 많이 행복해지자꾸나.
2018-03-07 위대한 인간 승리 – “사도 바울의 일생” 김종수
두껍고도 긴 "사도 바울의 일생"을 1년의 시간으로 책을 덮었다. 성경 속에 있었던 사도 바울이 어느 틈인가 나에게로 걸어 들어왔다. 크게 꾸짖지도 않았고 나무라지도 않았지만, 부끄러움에 눈시울을 적셨다. 태어나 요람에 쌓여서 아니 엄마의 탯줄에서부터 시작되어진 나의 신앙은, 습관처럼 아니면 어떤 죄의식의 부담으로 늘 나의 일상에 간신히 매달려서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다. 굳이 고해하듯 하는, 억지의 죄를 생각해내고 용서를 구하는 의식이 아니라,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있는 스스로의 수치와 부끄러움에 흘린 작은 속죄일 것이다. 어쩌면 너무 깊은 신앙으로 인해서, 세상살이의 간편한 죄들이 오히려 더 커다란 구속으로 묶여질까의 두려움과, 모르고 짓는 죄에 대한 나름의 적당한 면죄부를 주고 싶었던 것일 거다. 아는 만큼 살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알아야겠다. 과연 무엇이 어떤 마음이, 이렇게도 긴 한 역사 속의 인물을 알리기 위해 수없이 많은 정보와 고증과 그리고 작가로서의 문체까지 더하며, 이토록 긴 책을 집필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을 참을 수없다. 깊은 신앙인으로서의 작가의 모습은, 개인적인 몇 번의 만남으로 처음 만나는 순간에 느꼈지만, 이 책을 다 읽고난 후 더없는 새로운 존경심과 인내와 열정에 고개 숙인다. 짧은 문장 하나도 제대로 끝을 맺지못하고 서성이던 많은 시간들을 기억하는 나 자신을 알기 때문이다. 나도 어쩌면 내 인생의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다. 커다란 어떤 계시와 불같은 성령으로 변화되어지는 모습은 아닐지라도, 어느 날 내게도 변화 아니 인생의 거센 설레임과 뜨거움과 욕심을 만났다. 누군가가 알아주는 그런 변화가 아니라 진정한 삶의 마지막으로 걸어가야 하는 길을 찾은 것이다. 그것을 감히- 예술을 만났다고 하고싶다. 어떤 모습으로 남겨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해야하는 지는 알았다. 아는 만큼 살아간다고 아니 그렇게 살아진다고 믿기에 더욱더 많이 알려고 노력한다.
2018-03-07 쉼표가 머문 자리
그까짓 것 쯤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필수 영양제를 한 움큼씩 챙겨 먹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나는 은근슬쩍 혀를 찼다. 기본적인 비타민 C 조차 달 포에 한번 정도 먹을까 말까 하면서도 잔병치레 없이 튼튼하다고 자랑질을 하다가 큰 코를 다친 셈이다. 착한 일 한답시고 이웃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에게 병문안을 다녀 온 뒤 감기 바이러스를 끌고 온 것이 화근의 시초였다. 이 후 염려했던 대로 할머니로부터 전달된 바이러스는 내 안에 침투하여 독살스럽게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목이 따끔거리더니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고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셨다. 하지만 나는 그 따위에게 절대 질 수 없다는 집념아래 맨투맨 전투전에 들어갔다. 우선 콩나물국에 매운 청양고추 팍팍 넣어서 몇 사발 들이키고 진한 쌍화탕으로 몸살기를 달랜 뒤 종합감기약을 꿀꺽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솜이불을 뒤집어 쓰고 억지로 땀 밖으로 녀석을 뽑아내고자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이번엔 만만치가 않았다. 결국 일주일을 못 버티고 병원에 실려갔다. 담당 의사는 유행성 독감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열이 오르면 또 다시 응급실로 달려 와야 한다며 문밖 출입을 삼가 하고 집에서 격리요양을 할 것을 당부했다. 그까짓 것으로 뭐 그리 유난을 떠나 싶더니 웬걸 몇 날이 못되어 나는 아예 침대에서 내려 올 수 없는 중환자가 되고 말았다. 덜컥 겁이 났다. 잊고 지냈던 인생에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 오직 성공하기 위해 뛰고 달려온 길 뒷편엔 성숙한 모습은 찾아 볼 수도 없었고 행복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자리에 거룩한 그림자는 애당초 삭제돼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밝았던 주파수보다 낙담과 번민에 사이클을 맞춰 고독과 적막으로 낭비해버린 시간들이 엄청 슬펐다. 또 다시 한 주가 흘렀다. 이젠 뭔가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인생은 딱 두 갈래뿐임을 생각했다. 믿고 가느냐 안 믿고 가느냐에 달려 있기에 속히 심각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마침내 "에스더는 이미 회복되어 건강해졌노라" 고 외치며 나는 내 영혼에게 멋진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급격히 하강하고 있던 병세는 신기하게도 돌연 상승곡선을 탔다. 폭풍 속에서 추락하던 비행기가 그 모진 바람을 가르고 다시 하늘로 역 비상하듯 지쳐 있던 나의 세포들이 명령에 따라 활기차게 제 역할을 시작한 것이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슈나벨은 "내가 치는 음표는 다른 피아니스트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음표 사이의 정지, 바로 그곳에 예술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삶의 쉼표가 머문 자리 그 곳에 예술이 존재한다면 호되게 앓고 일어난 나의 변신은 참말로 예술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바이러스와의 전투에서 나는 두 가지를 선물로 받았다. 첫 번째는 내 안에 장전돼 있었던 걱정과 미움과 상처의 핀들을 안전하게 뽑아낸 일이다. 마치 클리어한 대나무 속처럼 말이다. 또 하나는 부잣집 마나님의 넉넉했던 나의 풍채가 쭉쭉 빵빵 'S'자의 섹시한 몸매로 탈바꿈한 일이다. 믿거나 말거나 내가 나한테 홀딱 반했을 정도다. 고치 속의 애벌레가 껍질을 벗어내고 호랑나비가 되듯 욕심의 옷을 훌훌 벗어 던진 나는 이 아름다운 봄날 나비가 되어 푸른 창공을 가볍게 날아오른다. 그리고 못된 감기부대를 송두리째 꽁꽁 묶어서 하늘까지 끌고 올라가신 사랑하는 내 이웃친구, 스웨덴 할머님의 명복을 빈다.
2018-02-07 사랑
새로운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다시 사랑이라는 뜻이 알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찾아본 사전에서의 뜻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며 또 보고 싶어하는 열렬한 마음이라고 한다. 나는 지금 강아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 그대로- 자꾸만 보고 싶고, 곁에 없음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하루라도 못 보는 날은 비릿한 살 내음도 어느덧 그리워진다. 차가운 겨울 해가 너웃하며 넘어간다. 낡은 지붕과 마당에 한가득 쌓여있는 낙엽과 세월에 취한 듯 불그스레한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 내 곁에, 털북숭이 강아지도 제법 심각한 얼굴로 하늘을 보고 있다. 아침에 데려다 놓고 저녁이면 데려가는 아들의 강아지이다. 온종일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심지어 화장실까지 따라다니며 오직 나 하나만 세상에 있는 듯, 입 맞추고 눈 맞추면서 온갖 사랑의 표현을 해준다. 강아지에게는 곁에 있는 내가, 그때의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이며 우주인 것이다. 문득 이 강아지를 바라보며 사랑을 되돌아본다. 누구에게나 어느 하나 그 무엇이든, 절대적이며 무조건 저절로 내가 낮추어지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욕심내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내가 요구하는 구속을 하지 않으며 언제나 베푸는 마음과 넓은 자유를 주는 것들. 그것이 진정 사랑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나만 바라보며 나만 사랑하는 그 강아지는, 저녁 끝 무렵에 돌아온 아들의 "집에 가자"는 한마디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숨에 따라나서며 사라져 간다. 그렇게 그 사랑도 매일 밤 끝난다…..